이혼하면 어때 #25
돌싱이 되고 나서 저녁 식사를 매번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고민거리였다.
혼밥에 익숙하기 위해 유(튜브) 선생과 많이 상의했다. 하지만 식탐이 적은 난 무엇을 먹는지 보다 누구랑 먹는지가 중요했다.
최후의 최후에는 신의 선물인 라면이 존재했지만, 그 하나만 믿고 의지하기엔 너무 긴 세월이 남아있었다. 그러므로 혼자 요리를 하는 연습이 필요했고, 어떻게든 건강한 끼니를 고민해봐야 했다.
팬데믹으로 저녁 문화가 바뀌었고, 왁자지껄한 모임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가족과 소소한 저녁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으로 정착되고 있다. 누군가가 매일 나와 같이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므로 퇴근 무렵에는 항상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약속을 잡을 것인지, 아니면 혼자 적당히 끼니를 때울 것인지.
과거에는 맞벌이 부부라 서로 회사 사정에 따라 퇴근 후 일정을 공유했고, 대체로 야근이 많은 내가 늦게 들어가곤 했다. 우리는 노쇠하고 아픈 고양이를 돌보고 있었는데, 특히 전처는 고양이 케어를 위해 집에 일찍 들어가곤 했다. 어쩔 수 없이 (당뇨 치료를 위한 인슐린 주사 놓을 시간을) 못 맞출 경우 내게 대신하게 했다.
고양이 '유리'는 신부전 및 당뇨 증세를 동시에 보이고 있었다. 안 좋은 신장을 위해 저염 식사와 깨끗한 물,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정기적인 인슐린 주사가 필요한 터였다. 아이가 없던 우리 부부의 대화주제는 항상 유리였다. 오늘 유리가 뭘 먹었는지, 변 색깔은 어떤지, 몸무게는 얼마나 늘고 줄었는지.
그런 일상이 익숙해져 아이를 낳으면 이렇게 살아가겠구나 했고, 이것이 단란한 가족의 행복이고 삶이겠구나 하고 짐작했다. 실제는 그 노력과 정성의 급이 다르겠지만.
나는 전처가 저녁식사를 했다고 하거나 같이 먹는 것이 아니라면 최대한 밖에서 먹고 들어갔다. 나 만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수고는 같은 직장인에게 너무 피곤한 일이기 때문에. 물론 스스로 식사를 차려 먹는 방법도 있지만, 부끄럽게도 라면 이외에는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각자 직장에서 일을 하고 받는 스트레스와 피로는 누가 더하고 덜 할 것이 없는데, 많은 부분의 가사를 전처가 했다는 것을 이제야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이것도 그녀가 결심한 이혼의 이유 중에 하나겠지.
이제 중년의 돌싱이 된 나는 저녁 식사 약속을 정하지 못하거나, 집에 마땅히 먹을 것이 없으면 퇴근길에 보이는 햄버거 가게를 간다. 패스트푸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혼자 남은 집에서 궁상맞게 이리저리 고민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여럿 있는 공간에서의 식사가 외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렇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나?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걷는 시간은 늘 일정하다.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내 보금자리.
이미 오랫동안 같은 길로 퇴근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길이 보이면 항상 '그쯤'에서 전화를 걸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따뜻한 나의 보금자리를 향하는 말.
나의 피로를 해소하는 시작의 말.
전화기 너머 그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말.
그리고 지금 행복한지 확인하는 말.
"퇴근하는 길인데, 뭐 사갈까?"
그래. 별 것 아니지만 나에게는 의미 있는 말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