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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Feb 21. 2023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 2

이혼하면 어때 #28

문식이는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퇴근 후 화장실에서 화장을 하고 나왔고, 숱이 별로 많지 않은 머리를 바쁘게 손질했다. 왁스를 골고루 바른 머리에 검은 비닐봉지를 쓰고 막 비벼서 풍성하게 하는 기술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했다.


그렇게 잔뜩 꾸미고 이태원 어느 클럽을 갔는데, 생각해 보면 이반들이 모인 곳이었을 거라고 추측될 뿐이다. 여성용 파운데이션을 가부키 화장처럼 두껍게 바르고, 이질적인 뒷모습으로 나가는 산적의 모습. 당시 직원들은 그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를 터트렸지만 그런 성향일 줄은 아무도 몰랐지.


그런 문식이가 다시 침대로 올라오는 장면은 거의 영화 ‘부산행’에서 보던 좀비가 기차에 올라오는 연출이었다. 사력을 다해 문식이의 면상을 밀어내며 버티고 또 버티다 협상을 시도했다.


“알았으니까 올라오지 말고 그 탁자에서 말해.”


나는 첫 경험을 앞둔 소녀의 심정으로 이불을 끌어 가슴을 가리며 말했다. 문식이는 술이 좀 깼는지 물을 벌컥 마시고는 탁자에 앉아 사연을 털어놨다.


“어릴 때부터 이런 성향은 아니었고..."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어가는 몬스터.


"20살 때 술 먹고 구로역 근처 사우나를 간 적이 있었어. 근데 그 사우나가 그런 사람들만 오는 곳인지는 몰랐지. 그래서 씻고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잠시 눈을 감았어. 술을 먹고 따뜻하니까 금방 취기가 오르고 잠이 들었지."


나의 울대는 크게 요동치며 침을 넘겼다.


"한참 자고 있는데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가 내가 덮은 담요 밑으로 들어오더라고.... 그리고..”


문식이의 경험을 요약하면 암묵적인 게이 집합소 사우나를 가게 되어 술이 취해 잠들었고 그 사이 험한 꼴을 당했으며.... 결론은 너무 좋았다는 것이다.


좋았다니! 좋았다니!!


그 이후 자기 성향을 알게 되어 동성을 사귀고 만났다는 것이다. 커밍아웃을 한 문식이는 용기를 얻었는지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내가 장담하는데 너도 경험하면 엄청 좋을 거야. 처음이 힘들지.”


이놈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지를 벗었는데, 무려 망사 팬티였다. 나는 이 순간 이성을 잃고 손에 잡힌 펜을 집어던졌다.


“꺼져!!! 이 개새끼야!!”

슝! 탁! 악!


하필 던진 펜에 눈알을 맞은 문식이는 울면서 ‘미워~’라는 말을 내뱉고 나갔다. 나는 불안함에 잠을 설치고.

뛰쳐나간 문식이는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집으로 복귀해 마음을 놓고 자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나 문식인데. 큰일났어. 노트북을 잃어버렸어. 어떡하지? 잉."


역 근처에서 술을 더 먹고 노숙했다고 한다. 술이 만취하면 길바닥을 침대 삼아 잠을 청했던 문식.


"야. 그거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미쳤어? 아이고 내가 너 때문에..."


우리는 병역특례를 받아 일반인처럼 살고 있지만 신분은 군복무 중인 군인과 다름없었다. 그 군인이 총을 잃어버린 것처럼 노트북을 잃어버렸으니 작은 사고가 아니었다. 당시 네트워크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 물리적으로 데이터를 보관했는데, 며칠 간 개발한 소스(source)의 분실도 문제였다.


심각하게 문제가 불거지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 그 결과로 병역특례가 해제되고 현역으로 군대에 가야한다는 것을 문식이는 알고 있었다.


결국 출근 전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용산을 돌아다니며 같은 모델의 노트북을 사비로 구매하고 머리를 맞대고 프로그램을 복구했다. 내 모습이 보수적인 상사의 모습으로 변한 건 당연지사고.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회사에서 우리는 다시 마주했지만 서먹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문식이는 담배피러 가는 나를 한두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미안해..”


고개를 숙이며 손을 모은 모습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았다. 뭔가 혀 짧은 소리가 심해졌지만, 나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지극히 일반이라서 너랑 엮일 수 없다고 강조하여 말했다.


그 말을 알아들은 문식이는 속내를 털어놨다.

“나는 네가 좋아. 그래서 숨기느라 힘들었어. 그래서 그랬지만 이제 포기하려고. 너랑 이 정도라도 잘 지내고 싶어.”


제길. 여자한테 받아야 할 고백을 동성의 산적한테 받다니.


다시 험한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너무 진심인 문식이 표정을 보고는 그만 두었다. 그렇게 우리는 화해를 하고 이전의 사이로 돌아왔다.


단, 한 가지 바뀐 것은.

“나 오늘 남자친구 생겼는데 너 닮았어! 아이 좋아.”


환장할 노릇이다.

이런 소리를 스스럼없이 듣는 내가 이상할 정도다. 나를 닮았다니. 애써 축하해 주며 응원했지만 그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난 너무 상남자였다.


어느 날은.

“그 새끼가 자기 부인한테 갔어!”


날 닮은 그 남자 친구는 유부남이었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참말로 세상에는 별놈들이 다 있다는 생각을 하며 그 푸념을 듣고 있었는데, 그 유부남과의 키스가 달콤했다는 소리를 듣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문식이의 연애는 계속되었던 것 같다.


문식이는 병역 문제 해결 후 일본을 갈 계획을 했다.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일본이 이반으로 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자기의 연애를 끊임없이 나에게 털어놓고 만족을 했는지, 그 이후 나에 대한 접근은 없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소집해제로 특례 복무 기간이 끝났고, 문식이는 남았다.


이상하게도 일반인이 된 나는 문식이와 연락하지 않았고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훗날 소속 선배들에게 들었을 때 문식이가 사고를 쳐서 현역 군인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아찔한 소식도 있었으나, 잘 마무리되어 일본으로 떠났다는 루머만 남긴 채 종적을 감췄다.


***


얘기를 다 들은 내 친구는 문식이를 동정하며 혹시 연락이 되어 한국에 있으면 셋이 한번 보자는 말을 했다.

분명 그 친구도 결혼했다면,


지금 즈음 우리와 같은 처지일 거라는 말을 덧붙이며.

"에효. 그 상무도 문식이 같을지도. 돌아가면 커피라도 한잔하며 풀어야겠다."


친구는 상무를 이해해보겠다고 했다.

나를 너무 좋아했던 문식이.

잘 살고 있을까?


아직도 일본에 있는지, 아니면 한국에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

혹시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연락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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