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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Feb 03. 2023

나는 왜 그녀와 결혼했을까 - 2

이혼하면 어때 #4

워크숍 이후 친해진 그녀와 가끔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른 그룹사 프로젝트로 차출되어 몇 개월 간 지원하러 가게 되었고, 사적인 인바운드/아웃바운드 통신을 차단했던 곳이라 연락이 소원해졌다. 근무지가 멀어지고 각자의 일이 바빠 안부만 가끔 물어보곤 했다.


그렇게 겨울이 찾아왔다.


자주 볼 수 없었던 우리는 오랜만에 당일 약속을 잡아 신촌역 근처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했다. 일찌감치 먼저 도착해 그녀를 기다렸지만, 약속 시간이 훌쩍 지나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약 한 시간 정도가 지났다. 추위에 떨고 있었던 나를 보고 뛰어오는 그녀.


"헉헉. 대리님. 정말, 정말 죄송해요. 차가 너무 막혀서..."


무척 미안해하며 여러 차례 사과를 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밝게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훗날 그녀는 그날의 웃는 나의 모습이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사귀기로 다짐했다고 전했다.)


예약된 밥집에서 식사를 하고 근처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러던 중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고개를 살짝 돌려 전화를 받은 그녀는 사뭇 진지했다.


".. 아.... 그래?... 아... 잠시만.. 지금 누구 좀 만나고 있어서, 흠. 잠깐만 기다려봐"


전화를 받으며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 의식 됐지만 짐짓 모르는 척 내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손으로 살짝 가리며 정면으로 나를 응시하고 또박또박 말했다.


"대리님. 지금 누가 소.개.팅. 시켜준다고 연락이 왔어요. 저 어떻게 할까요?"


그녀의 질문에 몹시 당황했지만 내게 보내는 신호는 명확했다. 이걸 모르면 바보지.


나는 티 내지 않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 남자는 별로 일 것 같으니 하지 마세요."


대답을 듣고 그녀는 생글생글 웃었다. 전화를 끊지 않은 채 다시 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그럼 빨리 사귀자고 하세요. 아니면 소개팅할 거니까."


그 당돌함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결국 내 입에서 먼저 사귀자는 말을 들은 그녀는 의도대로 된 것을 무척이나 뿌듯해했다. 사실 그전까지 본인은 간 보고 재는 연애는 싫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둔한 내가 몰랐을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고 회사 동료들에게 숨긴 채 비밀 연애를 즐겼다.


남들은 다 알지만 우리만 비밀이라고 믿었던.


***


하지만 사귄 지 2년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비교적 부유했던 내 부모님이 폭삭 망해 버렸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병원을 운영했던 부모님은 서로의 노후를 응원하며 갈라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의 사정으로 파산하였다.


파산을 막기 위해 얼마 안 되는 내 돈마저 허공에 사라졌다. 든든한 뒷배가 사라지고 수중에 돈마저 얼마 남지 않아, 정착을 바라는 그녀에게 결정을 해줘야 했다.


이런 사정을 모두 아는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헤어졌다. 가난한 결혼은 그녀에게도 큰 짐을 지울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헤어지는 날 그녀가 애절하게 울며 나를 설득했던 기억은 훗날 그녀와 결혼을 결심하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다.


-오빠. 연애 실컷 하다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나에게 꼭 연락해.


헤어진 6개월 동안 가끔 이런 메시지를 내게 보냈다. 그리고 어느 날, 이기적 이게도 그녀가 갑자기 그리웠다. 그래서 전화를 했고 그녀가 만나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무척 살이 찌고 초췌해 보였다.(당시 나로 인한 실연의 고통이라고 착각했다.) 이렇게 나에게 헌신적인 그녀라면 결혼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우리 다시 만날래?"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아니."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했지만 곧 이유를 알았다.


"결혼하는 게 아니라면 다시 만날 생각 없어."


우리는 그날 예식장에 결혼식 날을 잡으러 갔고 각자의 부모님 동의 없이 최대한 빠른 날짜를 예약했다. 그렇게 그녀는 5월의 신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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