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면 어때 #2
"정말요?"
의사가 한 말이니 진짜겠지만 놀라서 반문을 했다.
자칫 하지마비가 올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얘기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며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곧 내 주변에 아무도 없을 거란 생각과 예상보다 심각한 병세를 보며 미뤄왔던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내에게 말했다.
“의사가 수술하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해서 수술 날짜를 잡았어.”
하지만 어느 병원인지, 어디가 아픈지 묻지 않은 채 아내가 대답했다.
“그래? 심각한가 보네.”
생각에 잠긴 그녀는 잠시 후 말을 덧붙였다.
“수술하면 얼마나 입원할지 모르니 법원에 서류 접수하고 가.”
조금이나마 관계가 개선될지 모른다는 내 착각을 완벽하게 깨 주는 한마디였다. 어쩌면 내 몸을 팔아 동정을 받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고.
너 혹시 이 참에 나를 완벽하게 굴복 시키려고 그러니? 지금 내가 이렇게 아픈데 그럴 수 있는 거냐. 후우.
그녀는 완벽한 굴복을 원했거나 혹은 이미 마음이 정리된 것을 내가 멍청하게 모르거나 둘 중 하나겠지. 이미 남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분위기는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웠다.
이혼서류 작성 후에 가정법원을 찾았다. 법원에 1차 서류를 접수하니 숙려 기간을 주었다. 아이가 없던 우리에게 한 달 정도 지난 두 개의 날을 지정해 주었으며, 당일 담당 판사가 이혼을 확정해 주는 듯했다. 까다로울 줄 알았던 이혼절차는 의외로 간단했다.
***
우리는 법원을 나오며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 봤다.
내 기억으로 거의 일 년 만에 제대로 쳐다보는 그녀의 얼굴이었다. 그사이 늙어버린 얼굴과 하얗게 샌 머리칼을 마주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표정을 냉정하게 유지하려고 애썼다.
법원 앞 신호등에서 파란 신호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은 서로를 연민하기에 충분했다.
"..."
"...난,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
아무 말 없는 그녀를 보고 간단한 말을 던지며 등을 돌렸다. 그 순간 내 마음을 표현할 단어는 미어짐이 제일 적합한 것 같다. 그리곤 며칠 후 나는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하였다.
***
입원하고 둘째 날 수술이 진행되었는데 무척 겁이 나고 두려웠다. 맨몸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이동식 침상과 도살장 같은 수술실의 풍경은 너무나 생경했다. 잠시 후 있을 전신 마취까지 모든 것이 공포였지만, 호흡기 부착 후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소변줄 찬 병자의 모습으로 원래 지내던 입원실에 누워있었다.
그렇게 3일 정도 육체의 고통이 익숙해질 무렵, 현실을 자각했다.
아. 난 지금 이혼 절차를 진행 중이지.
입원 4일째 병원의 밤이 찾아왔고 불현듯 옛 추억이 쓸쓸하게 몰려왔다.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놀던 장면, 대학에 입학하여 캠퍼스를 몰려다닌 모습, 그리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속삭이던 모습.
그런 젊은 날의 순간들이 주마등 스치듯 홀연히 지나간 뒤에 보이는 나의 현실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인간은 외로운 동물이구나. 말 한마디, 서명 한 번에 나의 인생은 반토막 나는 아픔을 겪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은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우는 밤이 되었다.
퇴원 후, 목 깁스를 착용한 채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중문을 스르륵 밀었다.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고, 그 시선의 냉정함과 받아내는 내 감정은 우리 관계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고생했어.”
10년을 같이 산 부부의 대화치곤, 거의 한 달을 입원한 남편에게 처음 하는 말치곤 너무 간단했다.
“어.”
그 후 무미건조한 대화로 재산 분할을 상의했고 이미 나의 마음은 확고해져 빨리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대부분 아내가 하자는 대로 했고, 얼마 되지 않는 재산으로 말을 길게 할 일은 없었다.
숙려 기간이 끝나 두 번째 가정법원 방문을 하였다. 이미 우리는 결과를 갖고 움직이는 터라 얼굴을 붉히거나 어색해할 일은 없었다. 번호표를 들고 대기 복도에 들어서니 수많은 커플들이 정색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내가 말했다.
“다들 얼굴이 어둡네.”
아내는 소풍 나온 기분으로 얘기하는 듯 대답했다.
“그러게 마주 보고 얘기하는 건 우리뿐이네. 어머. 저 커플은 저렇게 멀리 앉아있어.”
이렇게 사소한 농담을 주고받다 시간이 흘러 행정관이 나와 우리 이름을 호명했다.
“김** 님, 이** 님”
문을 열고 나란히 착석해 주변을 살폈다. 생각보다 작은 공간이 보였고, 무척이나 썰렁한 분위기이었다. 판사는 신원을 확인 후에 처음이자 마지막 질문을 했다.
“김** 님 정말로 이혼하시겠습니까?”
“네.”
“이** 님 정말로 이혼하시겠습니까?”
“네.”
판사님 퇴근시간 이었는지 순식간에 판결이 내려졌고, 판결 확정이 된 서류 한 장만 달랑 받았다. 행정관은 구청에 방문해 신고하면 끝이라는 말을 전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확인 서명을 했고, 구청 신고는 집이 팔릴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재산 분할이 완료되어 깔끔한 상태로 서류가 마무리되는 것이 좋다고 동의했다.
그날따라 비가 많이 오고 있었다. 담배 생각에 1층 주차장으로 내려와 연초에 불을 붙였다. 내뿜는 담배 연기가 평소보다 진해 보이고 내리는 빗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병원에 병문안을 오신 어머니가 내게 삼제가 끝나는 해라며 위로를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 액운을 물리치기 위해 지갑에 넣을 작은 부적을 받아오신 어머니께 다 미신이라며 투덜거렸는데, 어느새 그 부적을 꺼내 보며 이 삼제가 빨리 지나가길 빌고 또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