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전골
나도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종종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자라면서 애정 결핍이었던 나의 엄마가 나를 건강하게 사랑할 수 없었다는 걸 인정하고 나서, 그렇다면 엄마의 딸인 내가 엄마에게 바통 터치 받은 삶을 살아가면서 과연 사랑이란 걸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옆에 있는 남편을 보며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을 느껴본다.
물론 그의 존재 자체를 기뻐하는 마음이 있다. 그렇지만 엄마가 나에게 그랬듯, 나도 그를 나의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그에게 집착하는 걸까.
나는 그와 함께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를 소유하고 싶은 걸까.
내 안에 그를 기뻐하는 마음이 더 클까, 아니면 그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상처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 클까.
나는 그에게 주고 싶은가, 아니면 그로부터 받고 싶은가.
......
어제 점심 때 비빔밥을 만들었다. 비빔밥은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들 중 하나다. 만들어줄 때마다 참 맛있게 먹는데, 이번에 만든 비빔밥은 특히나 맛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비빔밥에 들어갈 밥을 지을 때 표고버섯 우린 물과 다시마 조각을 넣어서 밥 자체가 풍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가 비빔밥을 만드는 과정에 이러한 변화를 주었다는 걸 몰랐으면서도 맛의 풍성함을 알아차리고 엔죠이하고 있었다. 같이 비빔밥을 먹으면서 그런 남편을 보고 있으니 마음 속에 기쁨이 꽃처럼 피어났다. 이 꽃은 어떤 꽃일까. 혹시 예쁜 꽃잎 안에 독성을 품고 있진 않나.
나는 남편이 즐거워해서 좋은 걸까
아니면 남편에게 받아들여진 것 같은 안도감일까
아니면 내가 만든 음식에 남편을 길들이는 쾌감인 걸까
아니면 시험 점수 잘 받은 것 같은 성취감일 뿐일까.
느껴보면 나의 작은 내면에도 뭔가가 참 많다.
부엌에서 쓰는 거름망을 내 안에도 통과시켜 사랑의 불순물들을 있는대로 모두 걸러내면 좋겠다.
거름망으로 국물 다 우려낸 멸치 걸러내듯 싹싹 걸러낼 수 있다면 좋겠다.
남편이 나의 결핍을 채우는 먹이감이 아니라
나의 따뜻한 사랑이 흘러가 오래도록 온기를 간직하며 머무는 보온병이면 좋겠다.
이번 생은 그런 삶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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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소 전골 >
전골 국물을 만들어 놓는다. 국물이 졸여지면 더 넣어야 하므로 충분히 만든다.
표고 버섯 우린 물로 멸치 육수 내고, 쯔유, 국간장, 통후추, 다시마 넣고 끓인다.
전골 소스도 만들어 놓는다.
땅콩 버터, 진간장, 머스타드, 매실 혹은 식초, 그리고 취향에 따라 설탕.
넓은 냄비 (나는 후라이펜 사용)에 채소를 가지런히 놓고 전골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끓인다.
무우, 연근, 알배추, 미나리, 불려놓았던 표고 버섯, 느타리 버섯, 등등.
무우는 익는 데 오래 걸리니 미리 익혀서 넣고, 연근은 3분 정도 먼저 데친 후 넣는다.
얼렸던 두부도 썰어 넣으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