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서라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최근 뉴진스와 관련된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뉴진스는 소속사 어도어와 대표 민희진의 차별 및 부당한 대우를 이유로
전속계약 해지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이 사건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느낀 세 가지 지점이 있다.
판결 이전 사람들은 어도어의 모기업 하이브의 방시혁을
'육수 돼지', '무능한 수장'이라며 격렬하게 비난했다.
반면 뉴진스와 민희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피해자,
불공정한 대우를 받은 혁명가 혹은 잔다르크처럼 포장되었다.
하지만 판결이 나오자마자 여론은 뒤집혔다.
사람들은 "법적으로 당연한 결과였다",
"뉴진스가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며 금세 태도를 바꿨다.
처음부터 뉴진스에게 자신을 투영해 혁명가가 되길 기대했던 사람들은,
현실이 기대와 다르자 이제 와서 자신들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양 행동한다.
어쩌면 뉴진스는 애초부터 잔다르크나 개천에서 난 용이 아니라 기득권일지 모른다.
같은 나이대 또래가 감히 누릴 수 없는 부와 명예를 이미 누리고 있었고,
그 뒤에 민희진이라는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민희진은 언론 앞에서 눈물과 분노를 통해 여론을 움직일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민희진이 만들어낸 여론의 바다에서 헤엄치다 이제와서야
마치 스스로 현명했던 선각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셈이다.
(물론 나 자신 역시 그렇게 보일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뉴진스는 어린 나이에 과도한 인기와 부를 얻은 소녀들이다.
감정적으로 흔들리기 쉽고, 절대적인 인기라는 권력에 취하기 쉬운 시기였다.
이들을 잡아주고 현실을 일깨워줄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는 바로 부모들이었지만,
이들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금 뉴진스가 가진 인기와 부는 하이브라는 거대한 기획사의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들이 지금의 위치를 온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었다.
하이브라는 거대 자본의 지원과 시스템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뉴진스와 그 부모들은 자신들에게 길을 닦아준 사람들을 향해
등을 돌리고 비난했다.
이미지 장사가 중요한 아이돌 세계에서, 배신이라는 이미지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추가적으로, 이 사건에서 뉴진스의 변호를 맡았던 법무법인 세종은
도대체 어떤 생각이었을지 궁금하다.
정말 승소 가능성을 믿었는지, 아니면 돈이 목적이었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법적인 판단이나 현실적인 기준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뉴진스의 모든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보자.
회사가 자신들을 하대하고 무시했다면 분명히 억울하고 화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즉시 회사를 떠나거나 계약을 파기하지 않는다.
보통은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거나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린다.
오히려 회사나 주변 동료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일은 금기시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은 부조리를 반복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기득권층을 비난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떤 고인 물 회사가 신인 그룹 멤버당 50억이
넘는 정산을 해줄까? 누구의 무시나 감정적인 불만 때문에 수천억짜리 계약을
쉽게 파기하는 것이 과연 옳고 합리적인 일일까?
이번 사태를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 점은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고
선동되는지였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판단보다는 여론의 흐름에 따라 움직였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나 스스로는 비슷한 상황에서 조금 더 침착하고
명확한 판단을 유지하려 한다.
이런 판단력이야말로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무기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