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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BTED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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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Aug 18. 2023

1편 / 4화.

지켜봐야 할 것들.

며칠이 지났다. 병원에서 미친 의사가 안 보인다. 병원이 바빠진 이유도 있지만 그가 환자를 치료 할리만무한데.. 일지를 작성한 뒤 나는 나도 모르게 수빈누나를 자주 찾아 지켜보게 되었다. 여전히도 선배의 그 갈굼은 계속되고 있다. 수빈누나의 존재 자체가 그녀에게 걸림돌인 듯 매사 딴지를 걸지 않고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


재활치료를 꾸준히 받으니 이젠 목발이 없어도 걸을만하다. 그래도 아직 무리를 할 정도는 아니라 살금살금 조심히 걷는다.


"이젠 목발 없어도 되나 봐?" 일주일 만에 나타난 미친 의사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어? 왜 이렇게 안보였어요?"

"어~ 좀 바빴어. 난 너처럼 나이롱이 아니거든. 그건 그렇고. 오늘은 저녁 먹고 9시에 자라~ 배고프다고 뭐 먹고 그때처럼 11시 넘기지 말고!"

"에? 왜요? 또 누구 지켜보러 가요?"

"넌 뭐가 그렇게 궁금하냐~ 이따가 다 알게 될 걸 피곤하게 뭘 일일이 물어봐~"


저런 사람이라 기대도 안 했다. 그냥 궁금하면 닥쳐보면 알 일.


"수빈 씨~커피 한잔 하까?ㅎㅎ" 징그러운 능구렁이가 따로 없다.

"네~ 선생님.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일전에 우연히 수빈 씨 수첩을 봤거든, 일부러 보려던 건 절대 아니었어.........."

둘은 자판기가 있는 로비로 자리를 옮겨 간다. 나는 나의 침대에 털썩 누워 게임을 켰다.

친구에게서 카톡이 온다.


'야~ 최현성. 학교 안 오냐?'

'아직 못 가. 걷는데 아직도 욱신거려'

'그려 알았다. 몸 잘 챙기고 학교 올 때 연락해라'

'ㅇㅇ'


내 중학교 때부터 친한 장동석이다. 중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고 지금도 같은 학교에 다닌다. 1학년까진 같은 반이었다가 2학년부터는 옆에 옆에 옆반이 됐다.


시간이 흘러 저녁밥을 든든히 먹었다. 간식 없이 밤 9시에 자려면 밥을 많이 먹어 둬야 한다.

지루하던 시간들이 지나고 난 베개에 머리를 뉘었다. 그날의 그때처럼 스르륵 다른 곳으로 난 잠에 취해버린다.


"오~ 오늘은 약속 잘 지키네!!"

은색의 흰머리칼. 그때 그 줘도 안 입을 웃긴 빨간색 정장을 입은 미친 의사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런 옷은 돈 주고 사 입는 거예요?"

나의 물음에 화를 내려던 찰나 난 바로 다른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은 머 하는 거예요? 수빈누나 또 지켜보고 보고서 작성해요?"

"아니. 오늘은 이 위대한 내가 어떻게 일처리를 했는지를 미리 지켜보는 거야.. 잘 봐두라고."

"뭔 일처리. 여기 아직도 나 있는 병원이구만~. 저기 봐요. 나 있잖아요 자고 있는 거."

"시끄러워. 넌 애가 왜 지켜볼 줄을 몰라."


저 멀리 가해자. 효정언니가 등장한다.

"어? 가해자다!"

"야, 근데 내가 주인공, 주연 이렇게 쓰라고 했더니만 피해자. 가해자. 이게 뭐냐?"

"그래야 더 극적으로 보이잖아요~ 그리고 주인공. 주연. 이런 건 오글거려서~으~"

"아휴... 그건 그렇고 준가해자는 뭐야?"

"뭐 그냥.. 가해자에 비해 자주 수빈누나 괴롭히는 건 아니어 보여서요.. 둘이 하는 일이 달라서 그런가 잘 마주치지도 않고.. 가해자라고 하긴 그렇고 그냥 준가해자라고 해봤어요~"

"어이가 없다."

"근데 접수된 거면 주인공이라 안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접수가 되건 안되건 내 선택은 아니니까. 너 편한 데로 해. 그러다 맘에 안 들면 반려 떨어지겠지. 그건 그렇고. 왜 효정언니라고 쓴 거냐? 이름을 제대로 안 쓰고."

"사실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정확한 이름은 알고 싶지도 않아서요. 그렇다고 누나라고 다정한 호칭 붙이기도 싫어서 그들의 호칭을 그냥 따라 쓴 거예요."


효정언니가 수빈에게 다가간다.

"방금 사용한 의료기구들 다 소독해 놨어?"

"네...."

"수빈아. 내가 언제까지 네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체크해야 되니. 여기 기구들 물기 있는 거 안 보여? 얼른 다 닦고 다시 소독해. 바로바로 하지 않으면 세균감염된다고 그렇게 말해도.."

"아.. 이거 아까 효정언니가 들고 나오신 건데요..."

"알아. 그래서, 나보고 하라고?"

"아니에요.. 제가 얼른 소독하고 소독기에 챙겨다 놓을게요."

"말하기 전에 좀 알아서 좀! 하자~ 화내면 자꾸 늙어~ 나 주름 생긴다고. 그리고 나 먼저 간다~"

"네.. 언니 들어가세요~"



"우리도 가자!"

"어딜요? 수빈누나는?"

"그 누나는 혼자 잘할 거야. 우린 저 사람을 도와주러 가야 되거든."

"에? 머 하러 저 사람을 도와요 대체~"

대답하기 귀찮은 듯 도리질 한 번을 하고 미친 의사는 효정을 따라간다.


어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창가 쪽 로얄석에 검은색 롱 코트를 벗어놓은 멋진 남자가 눈에 보인다.

레스토랑에 도착한 효정은 환희 웃으며 그 남자 앞에 가 앉는다.


"자기야~오래 기다렸어?"

"아니야~ 나도 방금 왔어~ 오늘 우리 효정이 생일이라 미리 예약해 뒀어~ 음식이 입에 맞으려나 모르겠지만..."

"무슨~ 내가 자기 미식가인 거 다 아는데~ 분명 최고일 거야!"


역시 멋있어 보이는 그 남자는 미식가인 게 분명하다.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마친 둘은 와인을 주문한다.

와인잔에 와인을 따르며 두 사람은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멋진 그 남자는 벗어둔 롱코트에서 반지상자를 꺼낸다.


"효정아. 내가 멋없이 이렇게 프러포즈해서 미안해. 네가 세상에 나온 감사한 오늘. 꼭 이 말을 하고 싶었어.

효정아 우리 결혼하자~ 오빠가 정말 잘해줄게~"


감동의 찬 얼굴을 한 효정은 눈물을 펑펑 쏟는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일어나 레스토랑 밖으로 나온다. 우리도 그들을 따른다. 문을 닫고 앞을 보니

내가 들어선 곳은 효정의 결혼식장이다. 문하나 밖으로 시간이 훅 지나있었다.

행복한 둘의 모습이 보인다. 많은 하객들이 두 사람을 축복해 준다. 병원 동생들이 모두 와 있지만

수빈은 보이지 않는다. 신부입장을 위해 한껏 꾸민 효정은 천천히 일어선다. 그리고 신부대기실을 나서는 효정을 따른다. 문을 열고 앞을 보니 효정의 신혼집이다. 거실에서 효정은 만삭의 몸으로 저녁을 준비하고 있다.

띠리링. 현관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에 효정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현관으로 마중을 나선다.

남편의 하루를 궁금해하며 걱정하며 남편의 옷을 받아 들고 둘은 행복하게 안방으로 들어간다.


우리도 안방으로 들어섰다. 만삭이던 효정의 배는 홀쭉 들어가 있다. 벌써 출산을 한 것인가? 하던 때

거실에서 "엄마~"하며 부르는 소리가 났다. 들리는 목소리는 5살가량 되어 보였다.

딸아이의 부름에 빨래를 정리하던 효정은 "엄마 바로 나갈게~"하며 다정히 대답한다.


거실로 나와 보니 5살의 효정의 딸은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엄마~ 나 오늘도 점수가 올라서 반에서 이번엔 3등 했어~"

"잘하네 우리 딸~ 요번에 옮긴 학원이 효과가 있었나 봐~ 아무래도 우리 딸이 머리가 좋아서겠지만~"


단란한 세 가족은 정말 행복해 보인다. 그 모습을 미친 의사는 아무 말 없이 계속 지켜본다.

진지한 그의 모습에 나도 말을 아꼈다.


아침 등교를 한 효정에 딸이 저녁에 귀가를 했다.

" 엄마~ 나 요번에도 대학 장학금 확정이야~ "


부족할 것 없는 집에 공부도 잘하는 훌륭한 딸을 두었나 보다.


아침에 학교를 갔던 효정의 딸이 기쁜 얼굴로 집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 엄마 나 합격했어!! 대학병원에 간호사로 취직됐어!! "

"우리 딸~ 엄마처럼 간호사가 꿈이라더니. 드디어 이뤘네~ 앞으로 너의 길을 응원할게~"

"응. 엄마. 물론 힘든 거 알지만, 난 환자들한테 진심으로 잘할 거야. 봉사하는 마음으로!!"


간호사의 직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듯 보인다. 엄마가 간호사였다는 사실도 너무 존경하는 착한 딸이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아픈 사람을 도와준다는 대견한 딸이다.



"엄마~ 이제 부서도 정해지고 교대도 돌아야 해서 기숙사 신청해야 될 것 같아~ 자주 못 와도 서운해 말고~

자주 전화 할게~ 사랑해 엄마~"


애틋한 인사를 뒤로 하고 엄마는 딸을 길 앞까지 나와 배웅한다. 우리는 효정의 딸을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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