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DEBTED 0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안 Aug 18. 2023

1편 / 5화.

지켜볼밖에는.

" 우리도 가자."

"효정언니 딸을 따라가요?"

"묻지 마~질문하지 마~"


효정의 딸을 따라 지하철을 타니 효정딸의 직장인 대학병원이 눈앞에 나타난다.

분주히 움직이는 의료진들.  아픔을 호소하는 환자들과 여기저기 울음을 터트리고 있는 보호자들. 아비규환을 연상캐하는 모습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효정의 딸은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간호사 복장으로 다른 선배간호사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서있다.


"야. 네가 학교 다닐 때 성적이 좋았다고 현장에서도 성적이 좋은 건 아니야. 너랑 같이 일하는 동료들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

 "이젠 죄송하단 말도 안 하네. 선배 무시하는 거야 뭐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말하기도 지친다. 알았으면 빨리 움직여!! 모르겠으면 물어라도 봐!! 네 맘대로 일처리 하지 말고 좀!"


환자들을 살피러 효정의 딸이 뛰어간다.


과로로 쓰러진 딸을 간호하는 엄마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린다.

"간호사! 여기 좀 보세요!!"

"네.. 어머님 무슨 일이세요."

"이것 좀 보라니까! 우리 애 살성이 약해서 주삿바늘자국 하나도 크게 흉터가 진다고! 아직 시집도 안 간 딸 팔에 이게 뭐야!!"

"우리 간호사가 신입이라 아직 혈관을 잘 못 찾아서 그랬나 봐요..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신입들 붙이지 말라니까! 그 여자 불러요!!"

"신입!! 얼른 와서 사과드려!!"


효정의 딸이 옆으로 온다.


"당신이야? 내 딸 팔에 바늘 마구 찔러댄 년이?!"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서툴러서..."

짝!! 이내 보호자의 손이 효정의 딸 빰을 후려친다.

"주사하나 못 놓는 게 무슨 간호사를 한다고!! 어쩔 거야. 엉?! 흉 질까 노심초사 키운 내 딸 팔에 이게 뭐야!! 니 팔에도 똑같이 남겨 줄게!! 이리 와!!!"


효정의 딸을 불렀던 선배간호사가 보호자를 말리고 나선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 교육시킬게요. 뭐 해? 얼른 사과드리지 않고!"

"죄송합니다.."

"아직 환자를 몇 번 본 적이 없어서 그랬나 봐요..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주사연습을 왜 내 딸 팔에 하냐고!!! 실력이 없으면 자기 팔에 연습을 하던 해야지!!!"


간신히 보호자를 달랜 후 둘은 간호사 쉼터로 향한다.


효정의 딸을 선배간호사가 쏘아본다. 이윽고 손을 들어 신입간호사의 팔뚝을 한대 내려친다. 반팔은 입고 있던 터라 금세 빨간 손자국이 선명하게 나버린다.

"야. 내가 너한테 전생에 죄라도 지었니? 자신 없으면 수간호사님께 부탁하라고 했잖아!! 왜 매번 니똥을 내가 치워야 해!!"

"죄송합니다."

아픈 팔뚝을 쓰다듬지도 못한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있다.

"아니, 죄송합니다도 지겹다. 오늘부터 혈관 잡는 연습 다시 해. 인형 같은 거에 말고."

"저.. 제 팔은 이미 혈관이 작아져서... 잘 안 잡히는데요..."

"그럼 더 잘 됐네!! 안 잡히는 혈관으로 연습해야 실력이 늘지!! 팔에 없으면 손등! 발등! 많잖아!! 넌 엄마도 간호사였다며 이런 것도 안 가르쳐 주시지??"

"......"

"하여튼 성적 잘 받고 오는 것들은 현장에서도 잘 나가는 줄 알지!! 글자만 잘 읽는다고 현장대응이 되는 게 아니야! 실력이 안되면 남들보다 더 노력할 생각은 안 하고. 당분간 넌 휴무 없어!! 오늘 야간근무조 12시까지 보조하고 퇴근해. 내일 6시에 근무시작하고. 알았어?"

"네..."


탁. 선배가 문을 닫고 나간 뒤 그때서야 효정의 딸은 빨갛게 부은 팔뚝을 어루만진다.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 사회초년생의 양팔 엔 셀 수 없는 주삿자국이 나있다.

순간 핑- 제대로 된 식사를 한지가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는 효정의 딸이다. 식사는 고사하고 화장실가기도 어려운 신입 간호사는 몇 주째 방광염약을 먹고 있다. 면역력이 바닥인 효정의 딸은 증상이 완화될 리 만무하고 식사를 거르는 일이 많다 보니 체중도 많이 줄어서 약기운에 순간 어지럼증을 느낀다. 그렇지만 계속 이러고 서 있을 순 없다. 대충 눈물을 닦고 밖으로 나간다. 지금 뛰어가도 스테이션에서 뭐 하다 이제 오냐는 핀잔을 들을게 뻔하다.


현성이 말한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모습인데요.."

"그렇지? 수빈이 기억나지?"

"네... 간호사들은 다 이렇게 후배교육을 시키나 봐요.."

"그럼 이제 이 일의 원인을 데려와야겠네. 넌 여기서 기다려"


잠시뒤 효정을 데리고 나타났다.

"뭐지? 희한한 꿈이네? 아, 여긴 우리 딸 병원인가?"


미친 의사가 효정에게 말한다.

"아줌마. 잘 봐. 저 팔에 수많은 주삿바늘 하며 앙상하게 마른 당신 딸. 팔뚝에 난 저 손자국은 선배간호사가 환자한테 한소리 들었다고 손찌검까지 했다고."


다다 뛰어가는 효정의 딸의 모습이 보인다.

어디서 농땡이를 부리다 오냐며 소리를 빽 지르는 선배들.

"혼자 살판이 나서 휴게실에서 자고 왔니? 바빠 죽겠는데 혼자 아주 여유로우시네요!"

선배간호사가 효정의 딸 가슴으로 차트를 집어던진다.

"빨리 가서 혈압체크해! 멍청히 서있지만 말고!"


본인의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던 효정은 쓰러지듯 주저앉는다.


"왜 내 딸이.. 착한 내 딸이 저런 수모를 겪고 있는 거예요.. 왜.. 뭐가 문제라서.."


미친 의사가 답한다.

"착한 당신 딸.. 봉사하며 열심히 간호하겠다는 당신 딸을 선배들이 교육한다는 이유로 저렇게 막대하고 있는 걸 보니 어때? 누구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나?"

"신입이니까, 좀 서툴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렇게 심하게..."

"그러니까 내 말이. 좀 서툴고 어리숙할 수 있는 걸 교육시킨답시고 저렇게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게 선배로서 할 짓인가 말이야. 어때.. 당신 과거의 모습하고 별반 다를 바 없지?!"

"내가... 난... 나도 신입일 때 다 겪은 일이니까.. 선배들은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도 그렇게 일을 배웠으니까.."

"당신도 저런 악행을 되풀이하게 만든 장본인이지. 내 가족. 소중한 내 딸이 겪게 된다면 이렇게 가슴 아파할 일을.. 당신도 저 사람들과 똑같은 행동을 했지. 이게 다 당신의 업보야. 한 치 앞을 모르는 미련한 인간들. 눈앞에 펼쳐져 봐야 그제야 본인들이 뭘 잘못하고 살았는지 후회를 하지. 왜 꼭 눈으로 봐야 아는 걸까. 한심하 기는..."

"내 잘못이니까, 내가 벌 받을게요. 우리 딸은.. 정말 착한 내 딸은 이런 일 겪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당신이 벌 받았다고 잘못을 뉘우쳤을까? 그냥 내 인생이 고달프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갔겠지. 내가 뭘 잘못한 지도 모른 체... 그리고 이미 늦었어!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럼.. 제가 지은 잘못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면 다 끝낼 수 있을까요..?"

"당신에게 가장 상처를 받았을.. 채수빈이 당신을 진심으로 용서한다면 당신 딸의 고단함도 점점 옅어지다 곧 끝나게 될 거야."

"이제 수빈이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용서를 빌어요?"

"그건 나도 모르지. 무슨 수를 써서든 채수빈을 찾아내 용서를 구하든. 그냥 벌어진 일 딸을 지켜보며 계속 마음 아파하든. 설령 채수빈을 찾는다 해도 당신이 용서받지 못한다면.. 아마 당신 딸은 계속해서 저런 수모를 겪어야 될 거야. 명심해! 당신 딸이 힘든 건 다 당신이 만들어 놓은 업보라는 걸."


주저앉아 울고 있는 효정을 뒤로하고 우리는 병원밖으로 나오며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내가 저지른 잘못을 내 가족, 내 자식이 대신하여 죗값을 치른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지금의 효정도 과연 좀 더 성숙한 선배로 후배를 대했을까?

이전 04화 1편 / 4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