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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BTED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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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Aug 18. 2023

1편 / 3화.

일지 쓰기.

“식사요~ 학생 피곤한가 아침 나왔는데 먹고 자야지~”


내 병상의 식탁을 펼쳐주신 뒤 식판을 내려주시며 조리실 아주머니가 날 깨운다.


“학생. 공부 잘하나? 병원까지 수첩을 들고 왔네~ 일기장인가? 이 수첩은 여기다 둘게~

얼른 밥 먹고 걷는 연습 해야지~”

“아.. 감사합니다..”


지난밤 꿈이 현실처럼 눈에 선~하다. 꿈인가? 아닌가? 일단 밥부터 먹어야겠다.

시금치 된장국과 감자조림 임연수어구이와 조미김, 김치. 후식으론 바나나까지 나왔다. 맛은 역시 일품이다. 엄마밥보다 맛이 좋은 이곳은 정말 맛집임에 틀림없다. 밥을 먹다가 옆에 놓인 수첩이 보인다. 얇은 가죽에

전~혀 비싸 보이지 않는, 개업식이나 연초에 회사에서 주는 일반 수첩들과 모양은 비슷했다. 메모장이 많아 그런지 조금 무게감이 있는 수첩을 들어 펼쳐 보았다. 촤라락 페이지를 넘겨봐도 아무 글씨도 없는 텅 빈 수첩이다. 볼펜은 흔하디 흔한 모나미볼펜이었다.

다시 옆으로 툭 던져놓고 아침밥상에 집중했다. 희한한 꿈을 꿨다 생각했다. 저 수첩도 엄마가 어제 두고 가셨나 보다 하고 관심을 꺼버렸다.

간밤에 꿈이 고단했는지 나는 두유를 마시다 깜빡 잠이 들었다.


“현성학생~ 아침 먹었으면 재활치료 가야지~ 자고 있으면 어떻게~”

“네?? 아….”

미친 의사다. 꿈에선 은색 머리칼이 지금은 깔끔한 검은색 머리칼이다. 무태안경을 써 지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베이지색 니트 안에 셔츠를 레이어드해 입고 검은색의 슬랙스를 입으니 멋있어 보이는 건 나의 착각일까. 꿈은 역시나 희한하다. 이렇게 정상적인 모습인데 꿈에서의 모습은….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내가 하라는 건 왜 안 하고 자고 있지?”

나에게만 들리게 미친 의사가 내 귀에 속삭였다.

“꿈 아니에요?”

“응. 꿈 아니에요~ 일단 치료부터 받으러 다녀와. 그러고 바로 작성해서 카톡, 알지? 자필! 꼭.

안 하면 점심밥 못 먹게 할 거야~”


재활치료를 하러 침대밑으로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디뎠다. 욱신. 확~올라오는 통증에 흠칫했다. 꿈에선 하나도 아프지 않았는데 다쳤던 다리에 통증이 밀려온다. 너무 실제처럼 꿈을 꾼 탓에 아직 아프단 걸 잊었었나 보다. 치료실로 가기 위해 천천히 천천히... 목발을 짚으며 한 발짝 한 발짝이 모든 운동이다 생각하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안녕~ 오늘은 걷는 게 좀 수월해 보인다~ 많이 안 아파?”

'어? 채수빈이다.'


“오늘 아침에 퇴근하신 거 아니에요?”

“응? 나 당직 엊그제였는데~ 당직 다음날 쉬고 오늘 오전에 출근한 거야~”

“아… 제가 착각했나 봐요..”

“나한테 관심이 많네~ 고마워~ 치료 잘 받고~”


생각해 보니 수빈이 누나는 환자들에게 정말 친절한 누나였다. 병실마다 모르는 환자들이 없을 정도로 환자 상태에도 관심이 많았고, 엄마가 회사일로 사무실에 가셨을 때 내가 밥을 먹는 걸 지켜보고 있다가 식사가 끝나자 식판도 직접 치워주었다. 간병인을 쓸 수 없는 할머니의 소변통도 항상 수빈누나가 치워드리고 간병인처럼 친절히 웃으면서 옆을 지키는 그런 착한 누나였다.


“할아버지~!! 담배 태우시면 안 된다니까~ 또 몰래 태우시네~!! 얼른 들어가세요~ 제가 대신 음료수 뽑아드릴게~”


재활치료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다. 수첩을 집어 들었다.

‘뭘 어떻게 써야 하는 거야…. 참…’


수첩과 펜을 들고 한참을 보다가 얼굴을 들어 병실문을 바라보니 날 보고 있는 미친 의사와 눈이 마주쳐 움찔 놀랐다. 미친 의사는 오른손가락 두 개를 V자로 만들고 내가 널 지켜보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저 인간 머야 대체.


고심을 한 나는 수첩에 어제의 이야기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수빈누나는 착하다. 나에게도 친절하다. 그런데 외로워 보인다. 친한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보인다.’


휴대폰으로 찰칵 사진을 찍고 카톡 친구목록 최상단에 있는 ‘ㄱ. 대장’에게 전송했다.

다 끝났구나 싶어 수첩을 옆으로 던진 뒤 침대에 누워 창 밖을 바라봤다.


“카톡카톡”

카톡을 확인해 본다. ‘ㄱ. 대장’에게서 답장이 왔다.


‘반려’


딱 두 글자의 답장이 와 있다.

난 미친 의사에게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미친 의사는 나에게 다가와 휴대폰을 바라본다. 이내 결국 나의 뒤통수를 갈겨버린다.


따악~!

“아야!!!” 나의 고함에 모두들 쳐다본다.

“하하하 세게 때린 것도 아닌데 엄살은..ㅎㅎㅎ”

멋쩍은 웃음을 타인들에게 보이며 미친 의사는  다시 나를 쏘아본다.

“아, 머에요. 하란대로 했는데 웬 반려??”

“야, 이게 어디가 내가 하란대로 한 거냐?! 보고 들은 거 모두 다 쓰라니까!”

큰 목소리로 말하던 그는 순간 놀라며 나에게 작게 말했다.

“아 몰라, 난 글재주 없어~ 고2 남자가 수업필기도 아니고 이 정도 쓰면 진짜 많이 쓴 거예요. 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한 대 맞은 억울함에 구시렁거리며 말했다.

“아, 몰라, 귀찮아, 몸도 성치 않은데 내가 왜 해. 왜 해야 되는지 설명도 안 해주고.

못해. 안 해. 싫어. 안 할 거야.”

“너 이거 안 하면 퇴원 못할 텐데…..”

그 말에 난 미친 의사를 올려다보았다. 오른손을 들어 마치 눈에 안 보이는 투명한 공을 잡는 시늉을 하니 왠지 내 다리가 욱신거리는 듯하였다.

“머 잘 됐네. 여기 밥도 맛있고 공부도 안 해도 되는데. 여기 평생 있죠 뭐~”

“아 이런 이기적인 놈을 봤나. 야. 너네 엄마는? 어? 무슨 죄야? 너 여기 지금까지 나온 입원비가 얼만지나 알아? 아버지도 안 계시고 엄마혼자 생계를 책임지시는데! 얼른 퇴원해서 학교 졸업도 하고 대학도 가서 직장 잡아 엄마 도울 생각은 안 하고, 나이롱환자로 평생 부모 등골 빼먹을 생각만 하네 이거~”

“………..”

맞다.. 나 학교 졸업하고 좋은 대학 가서 엄마한테 효도해야 하는데.. 잊고 있었다… 체념한 듯 말했다.

“알겠어요.. 내가 뭘 잘못해서 반려가 난거지나 알려줘요 그럼.”

“봐. 너 학교에서 서기 같은 거 안 해봤냐? 일단 년. 월. 일. 빠졌고. 주인공 이름도 빠졌고. 조연들 이름도 하나도 없고. 주인공이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 하나도 없잖아. 육하원칙! 공부 못하냐 너?

“알겠어요~ 다시 천천히 자. 알. 써볼게요!”



2023년 3월 29일.

피해자. 채수빈.   가해자. 효정언니  준가해자. 이서연

칠성병원 간호조무사로 친절히 근무하는 채수빈을 가해자 효정언니가 구박합니다.

다른 간호사들도 실수를 하는데 다 이해해 주면서 채수빈만 못 잡아먹어 안달인 거 같습니다.

간호사와 조무사가 뭐가 다른지 아냐면서 못 배워서 그렇다며 그런 걸 티 내지 말라고 막말을 했습니다.

차트정리를 꼼꼼히 하지 못했다며 밥 먹고 있는 채수빈누나를 불러 혼을 냅니다.

본인의 야간 당직도 아무렇지 않게 떠넘겨 수빈누나는 아빠의 생일인데도 집에 가지 못했습니다.

준가해자 이서연도 오전근무를 갑자기 바꿔달라고 하는 바람에 수빈누나는 아침도 못 먹고 일을 대신해 줬지만 고맙단 말대신 대신 일해준 게 유세냐며 앞으로 서로 부탁하지 말고 살자고 말하고 가버렸습니다.

이곳의 간호사들은 모두 채수빈을 왕따를 시키고 있습니다.


찰칵. 전송……………………………………… 5분 뒤 카톡으로 답장이 왔다.


‘ㄱ. 대장’ 접수완료.


나는 미친 의사를 보며 합격의 OK사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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