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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BTED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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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Aug 16. 2023

1편 / 2화.

관찰.

“채수빈 어디 갔어?”


앙칼진 선배간호사의 말이 들려온다.


“아까 점심 먹으러 식당으로 가던데요. 왜요? 또 무슨 실수해 놨어요?”

“아니, 내가 차트작성 이렇게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하는데 또 이렇게 해놨네. 얘는 도대체 진짜 생각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이래놓고 또 밥은 먹고 싶나 봐. 나참~”

“또 지만 알아보게 휘갈겨 써놨어요?”


나는 그들 옆으로 가 차트를 들여다본다. 알 수 없는 의학 용어들과 영어가 난무하지만 그리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닌데.. 란 생각이 들 때 저 멀리 뛰어오는 한눈에 봐도 사회 초년생으로 보이는 간호사가 보인다.


“죄송해요. 언니. 찾으셨다고….”

“그래~ 밥은 맛있게 잘 먹고 왔니? 수빈아?”

“아니.. 그게.. 저.. 먹다가 바로 왔어요… 제가 또 무슨 잘못이라도…”


선배언니의 불호령에 다른 동료 간호사가 연락을 취한 모양이다. 크게 화가 나 있다는 말에

2 숟갈만에 끝난 수빈이의 점심시간이었다.


“내가, 못 배운 티 내지 말고 정확하게 작성하라고 몇 번을 말하냐~이 차트 너만 보는 거 아니잖아!

도통 무슨 글씨인지 알아볼 수가 없어!! 이렇게 쓸 거면 니 일기장에 써!! 너만 알아보면 되는 거니까!!

간호사랑 조무사가 무슨 차이인줄 알아? 도무지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게 조무사인 거 같아. 내가 보니.

그러곤 잘 몰라서 그랬다 이유를 대지..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널 지켜보니 딱 그래.”

“죄송합니다…”

“됐고. 나 밥 먹고 올 동안 어제 진료한 차트들 기록 다시 해놔. 5살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게 정확하게!!”


" 언니..너무 심한거 아니에요?"

 다른 동료간호사가 우려섞인 말을 한다.

"얘. 나때는 더 했어~ 신입 기강 잘 잡아놔야지. 그냥 놔뒀다가는 닥거리하느라 진땀 뺀다~"


5살 아이는 아직 한글도 모르지 않나? 고2인 나도 어려운 용어들이 눈에 읽히지 않는데..

어떤 수로 5살까지 이해를 시키라는 건지. 너무 큰 요구를 하는 선배간호사다.


1시간이 지난 뒤 한 손에 커피를 들며 유유적적 걸어오는 선배간호사가 보인다. 다른 동료 간호사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으며. “어머 야~ㅎㅎㅎㅎ”를 남발한다. 이내 수빈에게 도달한 선배간호사는 차트를 뺏어들며 말한다.


“어디 봐. 그래 이렇게 잘 좀 적어놓으면 얼마나 좋아~왜 매번 화를 내야 하니 너는?”

“죄송해요.. 그리고 이건 김간호사님 차트인데 제가 잘 모르는 용어들이 있어서.. 정리를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못 배운 애랑은 일하기가 싫은 거야.. 이 정도도 못 알아보면서 어떻게 병원에서 일하니?

이참에 다른 일도 생각해 봐~ 병원일이 너한테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아. 여러모로.”


김간호사의 차트는 더 개발새발이다. 비교를 한다면 좀 전에 핀잔을 들은 수빈의 차트가 훨씬 또박또박 잘 적혀있었다.


“음… 어디.. 내가 읽어볼게..”

선배간호사도 도통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 난무하니 읽어낼 턱이 없었다.


“김간~ 이리 와볼래~”

수빈을 부를 때와는 확연히 다른 온도차가 느껴졌다.


“네~언니~”

“이 차트 김간이 작성한 거지? 진료 보조하면서 받아적느라 정신이 없었나 보네~”

“아.. 네... 이거 어제 디스크수술환자 차트예요. 여기 5번 6번에 디스크로 수술했다고 작성한 거예요~”

“그래그래. 환자 케어하면서 쓰느라 힘들었겠다. 작성한 사람이 내용만 잘 알면 됐지 뭐~수고 많았어~~”

“네, 언니 감사해요~”

“커피 안 마셨지? 내가 커피 뽑아줄게~ 쉬면서 일해야지. 점심 먹은 거 채하겠다~가자~”


수빈만 홀로 남겨진 채 간호사들이 떠났다. 수빈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오전 근무를 바꿔달란 선배의 급한 연락에 아침도 못 먹고 출근한 수빈이였다. 정수기에 물을 한잔 떠 벌컥 마셨다.

잠시뒤 또 한 번의 꼬르륵.. 다시 정수기 물 한잔으로 배를 채운다. 허기를 달래긴 한 참 적은 양이다.

다시 점심을 먹겠다 갈 수가 없는 노릇이다. 쏘아보며 소리칠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선배간호사는 데스크에 앉아 연신 휴대폰만 만지작 거린다. 옆의 수빈은 혼자 접수며 환자 안내까지 모두 도맡아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혼자서 고군분투하다 보니 차트작성이 또 흘겨써지게 된다. 그럴 때마다 입술을 꽉 깨물며 노려보는 선배간호사. 차트를 작성하며 의사에 불음에 또다시 달려가는 건 수빈뿐이다.


시간이 지나 교대를 할 시간이 다가와 수빈은 퇴근 준비를 하고 있다. 차트를 잘 작성해 놨는지 인수인계는

잘해 놨는지 마지막 점검을 한다. 다 떨어져 가는 포스트잍도 새 걸로 꺼내다 놓는다. 데스크에 부족함이 없는지 살피던 중 아까 그 선배 간호사가 수빈을 부른다.


“채간호사~~ 수빈아~~”

점심때와 다른 온도로 수빈을 부르며 걸어오고 있다. 무슨 이유에선지 내가 다 긴장된다.


“수빈아~미안한데~ 내가 오늘 급한 약속이 생겨서… 나 대신 오늘 하루만 당직부탁해도 될까?”

“네..? 저 오늘 오전부터 근무를 했는데요…. 서연언니가 부탁을 해서…그리고 오늘….”

“알아.. 근데 나도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겨서.. 엄마가 빨리 들어와야 한다고 지금 연락이 왔거든…”

“아.. 집에 일이 있으신 거예요..?”

“응.. 그런가 봐.. 무슨 일인지는 나도 가봐야 알 것 같아~ 미안한데 부탁 좀 할게~ 고마워~ 수고해~”


거절을 할 세도 없이 선배간호사는 손바닥만 한 명품가방을 들고 휭~나가버린다.


“언니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어~ 나 소개팅 잡혔거든.ㅎㅎ 대기업 다니고 집에 재산도 많다나 봐~

사진도 보니까 아주 훈남이더라고..ㅎㅎㅎ 언제 내가 그런 사람 만나보겠어~ 요번엔 확실히 잡아야지!”   

“잘해봐요 언니~ㅎㅎ느낌이 아주 좋은데요~”



“휴………. 이번이 몇 번째야.. 매번 이번만 이번만 하면서…..”


입었던 외투를 벗어 탈의실로 들어간 수빈은 체념한 듯 다시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나온다. 데스크에 앉아

본인의 일기장을 꺼낸다. 야간당직 때 급한 일이 없을 땐 본인의 일기장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는

수빈이다. 본인의 휴대폰으로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수빈.


“어.. 엄마. 나 오늘 당직해야 될 것 같아. 갑자기 선배언니가 어머니가 편찬으시다네...  아빠 생신인데 못 가서 미안~ 아빠한테는 문자 남겨 놓을게~ 아침에 퇴근하고 가면서 케이크 들고 갈게~ 오늘은 두 분이서 오붓하게 즐거운 저녁식사 하세요~”



오전 7시. 데스크에서 퇴근 준비를 하던 수빈이 옆으로 가슴에 ‘이서연’이란 명찰을 단 간호사가 서있다.


“수빈아. 언니가 오전근무 부탁해서 기분이 나빴니? 효정언니가 네가 많이 힘들고 서운해한다고 가서 사과하라고 그러던데.”

“아니요.. 언니 저는 그런 말 안 했는데요..”

“효정언니가 없는 말 할 사람은 아니니까. 뭐, 미안하게 됐네. 후배님 피곤하시게 해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힘들 때 서로서로 돕고 그러는 거지. 그런 걸 뭘 이르고 그러니.. 됐다~ 이제 후배님 무서워서 부탁도 못하겠네~ 근데 이건 알아둬! 선배 부탁에 구시렁거린 건 너야. 앞으로 우리 사이에 서로 부탁은 절대 없는 거다. 명심해. 차사해서 원~”


변명할 틈도 없이 서연은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간호사들도 일제히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 퇴근인사를 받아줄 이가 아무도 없는 수빈은 겉옷을 손에 들고 터벅터벅 회전문으로 나선다.



“와… 저 싸가지들.. 원래 간호사들 다 저래요? 내가 아는 백의의 천사는 저런 모습들이 아닌데!!”

“간호사라 다 그런 건 아니지. 저런 사람이 간호사가 된 게 문제지.”

“아니, 저 서연인가 뭔가도 고맙다는 말은 왜 안 해? 자기 때문에 아침도 못 먹고 출근해서 일해줬구만~

진짜 사람들 인정머리 없다! 내가 다 약이 오르네!! 아 열받아!!”

“그렇게 까지 이입할 필요는 없고~ 잘 봤지? 여태 지켜본 모든 상황을 잘~ 작성해서 사진으로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 꼭 자필로 써야 한다는 거 잊지 말고.”

“카톡이요? 누구한테요?”

“일어나서 카톡을 열어보면 최상단에 ‘ㄱ. 대장’이라고 항상 있을 거야. 그분한테 보내면 돼.”

“네. 일단은 알겠어요. 근데 내가 왜 해야 하는데요?”

“시키는 데로 자알 하면 그때 알려줄게~ 이제 얼른 일어나 아침 먹고 작성해~ 아! 그리고 어차피 그 수첩에

적혀있는 글은 다른 사람에겐 엉뚱한 이야기로 읽힐 거야~ 그러니까 애써 누구한테 알리려고 하지마~

그러다 정신병원 입원하는 애 여럿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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