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는 공장에서 미싱일을 하셨습니다.
오전에 일을 나가시면 저녁 늦게 귀가를 하셨습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어머니의 쪽지가 냉장고에 붙어있습니다.
"오이무침. 감자볶음. 가지볶음, 호박볶음. 김.
냉장고에 해서 넣어놨으니 학교 갔다 오면 밥 퍼서 먹어라.
ㅡ 엄마가 ㅡ "
큰 내용은 없지만
그 쪽지를 들고 많이 울었습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냥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이 기쁘고 감사해서 그랬던 듯싶습니다.
우리를 생각해서 음식을 해놓으시는 것이 감사해서 그랬던 듯싶습니다.
이 집에서 살 때 또 한 번의 물난리가 났습니다.
여름에 장마로 우리 집은 또 물에 잠겼습니다.
그래도 이전에 한번 경험했던 터라
요번에는 엄마를 곧잘 도와 빨래며 설거지며 능숙하게 해냅니다.
시련은. 지금 당장은 날 힘들게 하지만
이것은 곧 삶에 노하우가 쌓여 같은 일에 또 처했을 때 헤쳐나갈 지혜를 얻기도 하나 봅니다.
지금 겪은 일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그 해 겨울.
밤 12시가 다 돼서 오신 어머니의 봉지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어머니의 손에는 검정봉지 3개가 들려있었습니다.
"왜 안 자고 일어났어"
"엄마 오는 소리가 들려서 깼어."
"내일이 크리스마스라서 선물사 왔어~
손 따듯하라고 장갑이야~"
커오는 동안 처음 받아 본 첫선물이었습니다.
빨간색 벙어리장갑에 앙고라털이 보송보송 나 있었습니다.
정말 보드랍고 따듯한. 선물이었습니다.
다른 봉지들엔 귤 한 묶음과 붕어빵 한 봉지였습니다.
그날은 엄마의 첫 월급날이셨습니다.
아직도 저는 벙어리장갑을 보면 그날의 그 밤이 생각이 납니다.
가난한 반지하 화장실도 없는 방 두 개인 집이었지만
따듯했던 겨울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어떻게 알았는지 집에는 빚쟁이들이 찾아왔습니다.
작은방에 있던 우릴 옷을 챙겨 입혀 치킨을 먹으러 가자며
엄마는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그날 큰언니는 숙제가 있어 집에 있었고
작은언니와 저 그리고 어머니 이렇게 셋은 동네 치킨집으로
갔습니다.
내 인생 첫 번째 치킨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아버지께서 월급날이면 누런색 종이가방에 기름종이에 둘둘 싸 포장해서 사다 주신 치킨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멋져 보이는 가게에서 접시에 세팅되어 나오는 치킨은 훨씬 고급스러운 요리 같아 보였습니다.
반정도 먹었을까요.
큰언니가 가게로 뛰어왔고
난 영문도 모른 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광경은.
살림살이들은 깨지고 나뒹굴고 있었고
이불이며 옷가지들도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두꺼운 나무 바둑판도
방 한가운데에 넘어져 있었습니다.
온 마을은 평온한데 우리 집에만 폭격이 떨어진 듯 보였습니다.
그 보다 마음이 가장 아팠던 것은,
그 한가운데에 인생에 실패자처럼, 인생에 낙오자처럼
고개를 떨구고 앉아계신 아버지였습니다.
그날 아버지의 몸은 어린 나의 몸처럼 작아 보였습니다.
아버지와 큰언니만 두고
우리끼리만 치킨을 맛있게 먹고 온 게 너무도 미안했습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것도 모르고 난 철없이 치킨을 먹고 있었구나. 맛있다며 좋아했구나..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우리가 다 있었다면 말릴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거처를 찾아
또다시 이사를 갑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우리 어머니의 나이는 34세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리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