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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Feb 16. 2023

닫힌 대문. 내 세상과도 같다.

언제 끝일지 모를 이방인 같은 어린이

반지하에 세를 얻어 우리는 이사했습니다.

아마 이때 이사에 가장 많이 힘을 쓴 사람은 큰언니였을 겁니다.

옛날 국민학교 시절엔 준비물도 책도 많았으니 동생들의 옷과 물건도 본인의 옷과 물건도 챙겨야 했습니다.

그때 큰언니의 나이 고작 국민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반지하에 살 땐 주인집 손녀딸이 너무도 얄미웠습니다.

한 번은 주인집에서 대문이 잠기면 초인종 누르지 말고 열고 다니라고 열쇠를 주셨었는데

토요일 학교가 끝나고 놀다 보니 열쇠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초인종도 누르지 못하고 집을 향해 언니를 큰소리로 불렀습니다. 두어 번 불렀을 때쯤.. 

"시끄러워!!!" 

소리에 옆으로 눈을 돌리니,

그때 1층 거실 소파에 앉아 쉬는 주인집 손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급히 저의 눈을 피해 티브이를 응시하며 모른 채를 하더라고요.

나보다 2살 정도 많아 보이는 언니가 시끄럽다 소리를 쳐 더 이상 큰소리를 낼 수 없었고..

여러 번 불렀지만 인기척이 없다는 것은 집엔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곤 언니가 올 때까지 집 앞 대문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굵은 창살 대문이라 문 앞엔 내가 앉아 있는 것도

보였을 텐데 주인집 손녀는 절대 물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아침도 점심도 먹지 못해 배는 고프고..

친구집이라도 갈까 싶었지만 그러다 언니와 길이 엇갈릴까 어디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외출뒤 돌아온 주인집 아주머니와 함께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어요.

문 열어줄 1분의 시간도 쓰기 아까운, 없는 자에게는 모든 인생과 상황들이 절대 후하지 않구나.

우린 그저 반지하 작은 집에 세 들어 사는. 아이들은 많고 그저 시끄럽고 귀찮은 존재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한 번은 너무 배가 고파 전기밥솥을 열었는데, 누렇게 말라 있는 붙어있는 빈 솥만 있었습니다.

붙어있는 밥알들은 밥이라기 보단 누룽지에 가까웠지만 너무도 배고픈 나에겐 그저 맛있는 밥으로 보였습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텅 비었고, 고추장이 말라붙어 있는 고추장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밥을 고추장에 찍는 것이 맞는 표현인지 고추장을 밥에 찍는 것이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그날 먹은 고추장비빔밥은 배를 채우기엔 너무나 부족했지만,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퇴원하신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완쾌는 아니시지만 당분간은 통원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약을 꾸준히 복용하셔야 했습니다.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드디어 엄마가 우리들에게 돌아왔구나!


지난번 어머니 병원에 문병을 갔을 때 기억이 납니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가 너무 반갑고 슬펐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가 슬퍼 보이면 엄마가 정말 죽을 것만 같은 생각에

엄마에게 일부러 즐거운 이야기, 웃긴 이야기만 하며 평소보다 더 오버스럽게 즐겁에 웃고 떠들었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니, 지금이 왠지 엄마와 마지막인 것 같단 생각에.. 처음부터 참아온 눈물이 내가 어떻게 할 세도 없이 펑펑 흘러내렸습니다. 내가 울어서 엄마가 죽을 거 같단 생각. 나 때문에 엄마가 오늘이 마지막 이란 생각. 그 모두를 인정한 것이 나의 눈물이라 우려하던 일이 나 때문에 사실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무서워 울음을 억지로 참으려 하면 할수록 눈물이 더 나왔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드라마에서 보던 병원에 입원하면 꼭 마지막이 되는 장면들을 봐와서 어린 마음에 우리 엄마도 그리되는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4인실 정도의 병실이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주변의 시선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엄마를 잃을 것만 같은 어리고 작은. 겁에 질린 한 여자아이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2학년의 어린이가 참긴 정말 힘든 감정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꼽고 병원침대에 앉아 엉엉 울고 있는 작고 마른 막내딸을 보고 있었을 엄마의 심정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아픈 본인 탓을 하시며 속이 다 타버리셨을 겁니다.

아픈 것은 내 탓이 아니지만 얼마나 본인 탓을 하시며 마음 아파하셨을까요.

비쩍 마르고만 있는 딸자식을 봤을 때 얼마나 사무치셨을까요..


지금 저도 엄마가 되어 그날일을 회상해 보면 아마도 내가 떠나간 뒤 혼자서 많이 우셨으리라, 얼른 나아서 내 자식들 내손으로 챙기러 가야겠구나.. 이렇게 여기서 앉아만 있을 순 없겠다 생각하셨을 겁니다. 나보다 엄마는 더 많이 슬프고 더 많이 가슴이 아프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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