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3번의 전학은 기본이었거든요.
나의 앞으로의 서울 생활이 어떤 시련이 될지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서울 어느 한 마을. 언덕 가장 꼭대기집에 우리는 이사를 했습니다.
달동네처럼 우리 집은 너무도 허름한.. 방과 방이 제대로 나뉘지도 않았고
부엌이라고 볼 수 없는 현관 겸 부엌이 위치한 판자촌집이었습니다.
우리 옆집에는 밤에만 일하러 나가는 건달아저씨들이 살고 있었고
가끔 낮에 마주치면 과자 사 먹으라며 천 원씩 주시곤 하시는 좋으신(?)분들이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정말 다행히도 우리 주변엔 나쁜 사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학교로 다시 놀러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언덕에서 내려와 도로를 건너야 학교에 도착을 할 수 있는데
그 도로에서 전 교통사고가 납니다.
은색의 봉고차가 제 오른쪽 발을 밟고 지나가 발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동네에서 사고를 목격한 주변 상인분들이 뛰어나와 저를 부축해 주셨고 발을 딛어보라 하셨지만
다친 내 발은 무척 뜨거운 불덩이 같은 느낌이었고,
마치 땅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내 발을 밀어내는 듯하였습니다. 이것이 아픔인지도 전 잘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도저히 땅에 발을 내려놓을 수가 없어 한 발을 든 채 주변 화단 같은 큰 돌에 앉아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엄마는 근처 공장에서 미싱일을 하셨습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
엄마회사로 연락을 해주신 동네 아주머니.
그렇게 시간이 한참 지나니 저 멀리서 엄마는 헐레벌떡 뛰어오셨습니다.
엄마와 함께 사고를 낸 차량을 타고 전 병원에 입원하러 출발합니다.
그렇게 한 달 보름의 병원신세를 지게 됩니다.
엄마는 저를 간호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셔야 했습니다.
1년을 채 살지 않고 우리는 눈 내리는 밤 또 이사를 합니다.
그날은 언덕에 내려앉은 눈이 반짝거려 길전체가 다이아몬드가루가 흩뿌려진 듯 보였던 아름답고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토큰. 옛날 서울버스를 탈 때 사용하던 일종의 버스요금)
한 번은 명절을 맞아 시골집에 다녀와 보니
집에 도둑이 들었었습니다.
그 당시 뒷문을 잠그는 열쇠는 마치 모기향처럼 생긴 동그란 철제로 된 잠금쇠였는데
문틈으로 철사를 넣어 돌려 잠금쇠를 열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온 집안을 뒤지고 들쑤셔 놓아 옷가지들은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판매하려고 사놓아 둔 토큰과 잔돈으로 사용해야 할 천 원짜리 지폐들과 동전들 모두를 도둑맞았습니다.
어린 눈으로 본 도둑이 훑고 간 그 광경은 무서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게 또 우리 집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토큰가게에서 어머니께서는 과일장사도 같이 하셨습니다.
엄마 몰래 귤을 먹고, 엄마께 들켜서 혼나기도 하고 제 기억엔 판매한 양 보다
우리 가족이 먹은 양이 더 많았던 거 같습니다.
엄마는 또 한편에서 미싱으로 소일거리도 함께 하셨습니다.
엄마의 미싱질을 옆에서 보고 있자면 꼭 손을 다치실 것만 같아 늘 무서워 오래 지켜보기 힘들었습니다.
미싱일을 하시다 토큰과 과일을 판매하시려 일어서시다 손이라도 다치실까
전 매일 엄마와 함께 장사를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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