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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Feb 16. 2023

이런 나도 살아냅니다.

고생할 줄 알고 태어난 건 아닙니다.


84년 12월 겨울. 경상도의 한 시골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유년기에 기억하는 집은..

툇마루가 있고 창호지가 발린 문이 있는,

부엌엔 아궁이에 커다란 무쇠솥이 걸려있고

한편엔 석유곤로(당시엔 가스레인지가 없어 대용으로 사용하던 석유난로 종류)가 놓여있습니다.

찬장이라 불리는 나무로 된 그릇진열장이 하나 있었고, 그 문은 미닫이 문으로 되어있습니다.

쌀을 보관하던 작은 쌀 디주(뒤주의 경북 방언)가 있었습니다.

어린 나에게 엄마는 쌀뒤주에 들어가 죽음을 맞이한 선왕의 이야기를 해주며 근처에 못 가게 하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정말 무서웠던 기억이 납니다.


주방에 따로 수도시설이 되어있지 않고 마당에 수도가 있어 설거지며 식재료 세척은 마당에서 했었습니다.

화장실 역시 마당을 가로질러가야 하는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고 

툇마루중간에 항상 쇠로 된 요강이 있어 밤늦은 시간엔 화장실 가기 무서워 요강을 사용했습니다.

여름엔 그냥저냥 사용할 만 하지만, 겨울엔 칼 얼음이 엉덩이에 붙는듯한 차가움에 온몸이 순간 얼어붙는 

느낌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 시골살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봄에는 농번기철이라 부모님이 바쁘셨지만

시골에는 놀 것이 참 많았습니다.

뒷 산에 올라 진달래도 따서 먹고,

논두렁에 쑥과 냉이도 캣습니다.

들판에 난 아직 여린 풀들이 소꿉놀이하기에  좋습니다.

얼었던 땅도 녹아 흙밥을 짓기도 수월하고요.


여름에는 집 앞 개울물에서 언니들과 실컷 물놀이도 하고

잠자리도 잡고 매미도 잡고 즐거웠습니다.

밤이면 반딧불이가 아름답게 밤하늘에 은하수처럼 반짝이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옥수수를 삶아 먹고.

모깃불을 피어놓아 불장난도 조금씩 하며 혼도 많이 났습니다.


가을에는 옆집 감나무에서 감도 따서 먹고.

흙놀이도 맘껏 했습니다. 시냇물에 종이배도 띄워 보내보고

누구 배가 빠른지 내기도 했었어요.

뒷 산 밤나무에서 밤도 주워와 아궁이에 군밤을 해 먹으면

정말 최고의 간식이었어요.


겨울에는 집 주변 모두가 눈썰매장으로 변합니다.

비료포대와 논두렁에 지푸라기만 있으면

하루종일 눈썰매를 탈 수가 있었어요.

신나게 놀고 집에 가면 군고구마도 먹고,

쥐불놀이. 그날만 허락된 불놀이를 실컷 할 수 있었습니다.

아궁이방은 너무 덥습니다. 아랫목은 정말 따듯해서 꽁꽁 언 손발이 금세 녹습니다.

엄마가 잘 준비를 하시려고 시집올 때 해오신 비단이불을 펴면

그 이불이 어찌나 시원한지 이불 위에서 수영을 합니다.

내려오라고 엉덩이 한 짝을 맞아야 이제야 조용히 잠자리에 듭니다.


옛날 시골살이가 저에게는 좋은 기억만 있습니다.


그래서 은퇴를 하게 되면 옛날 살던 동네.

옛날 살던 집을 찾아 귀향을 하나 봅니다.


저에게 시골은

즐겁고 신나는 기억만 가득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정말 고되셨을 거예요..

새벽녘 일어나 밭으로 일을 가시면서도

아이 셋 끼니도 챙기시느라 집과 밭을 오가며 바쁘셨을 테니까요.

아궁이에 불을 때어서 국을 하고 곤로에 밥을 했으니..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는 마당에서 했어야 했습니다. 그 큰 솥을 씻을 땐  솥이 무거워 이동이 힘드니

마당에 있는 수도에서 물을 나르고, 씻은 물은 퍼내고를 두어 번 반복해야 솥 설거지는 끝이 납니다.

그런 뒤 식구들 씻을 물까지 데워야 했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 당시 저의 기억엔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식구들이 많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옛날분이시고 맏아들이셔서

살림엔 당연히 손도 안 대셨습니다.

시어머니가 계셨어도 무척이나 힘드셨으리라 짐작됩니다.

거기에 아들도 못 낳고 딸만 줄줄이 셋을 낳아 시집살이도 있으셨습니다.


증조할머니께선 앞을 못 보시는 장애가 있으셨는데,

우리 자매들은 할머니를 '눈감은 할머니'라 불렀습니다.

아침 일찍 어른들은 밭일을 가시면 눈감은 할머니가 저희 셋을 돌보셨던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는 이도 몇 개 없으셔서 식사하실 때 할머니 입의 움직임을 유심히 봤던 기억이 납니다.

발음도 정확지 않으셨지만 우리를 늘 푸근하게 품어주셨던 기억은 아직도 선합니다.


지금 내 나이가 40이 되었습니다.

가끔 옛날집 살던 기억들을 언니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그 시간들이

가장 행복한 기억만 있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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