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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BTED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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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Sep 14. 2023

4편 / 3화

너의 행복에 아픔을...

빨간 정장을 곱~게 차려입은 미친 의사와 나는 어느 한 작은 음식점에 와 있다. 이곳이 어디인지 멍청한 얼굴로 이리저리 훑어보는 중에 젊은 사장으로 보이는 흰 티의 청바지. 그놈이 들어선다.


"민희야~ 오늘 주문이 좀 밀려서 좀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아~"

"네~ 사장님 레시피가 맛집으로 소개되더니 주문이 엄청 늘었어요~ 이러다 곧 부자 되시겠네요~~"

"부자 되면 좋지~~~"


특별 레시피로 이 지역에선 맛보기 힘든 메뉴를 개발한 그는 입소문을 타고 점차 일이 바빠지는 듯 보였다.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이다 보니 매장은 협소했지만 밀려드는 주문에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캬~ 역시 마감 후에 먹는 맥주가 진짜 맥주지!! 오늘도 고생 많이 했어~ 오픈부터 지금까지 네가 없었다면 난 여기까지 못 왔을 거야~ 너무 고맙다 민희야~"

"뭘요~~ 저도 배울 게 너무 많아서 얼마나 다행이고 즐거운지 몰라요~~"

"그래서 말인데 민희야.. 앞으로도 네가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줬으면 좋겠는데... 사실은 내가 얼마 전부터 너에게 다른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어.. 여태까지는 네가 나에게 힘이 되어 줬었다면 앞으로는 내가 널 멋지게 지켜줄게!! 지금처럼 너는 그냥 날 믿어주기면 돼. 내가 힘이 날 수 있게.  나 봤지?!! 이 작은 가게에서도 큰 매출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는 사람인. 네 눈으로 확인했잖아. 우리 진지하게 만나보지 않을래?"



저 둘을 지켜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한 가정을 부서뜨려 놓고서 옛날일은 까마득 잊은 것인지 연애질이나 하고 있다.


"와~ 저 새끼는 뭔 팔자인지 잘못을 저지르고도 맘 편히 사는 것도 열받아 죽겠는데!! 돈도 잘 벌어!!! 이젠 예쁜 여자 친구까지... 벌주러 온 거 맞아요? 일을 왜 이런 식으로 하시지?"

"네가 내가 해놓은 일에 이렇고 저렇고 토 달 위치가 아니다. 잊지 말자."

"와.. 오늘따라 특히 더 빨간 정장이 너~~~~ 무 꼴 보기가 싫어!!"

"너 여자 친구 없는 걸 나한테 화풀이하지 말자. 네가 능력이 없는 걸 왜 나한테 성질이야!"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지금~  ㅇ러 차표 ㅇ;ㅡ ㅍ "


내 말을 듣지도 않는 미친 의사를 한껏 째려본 뒤 나는 다시 앞을 보았다.


잠시 뒤 주방에서 나온 그는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다. 여전히 오늘도 배달 주문이 물 밀듯 밀려온다.

이윽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민희. 그녀의 손에는 산모수첩이 들려있다.


"오빠~ 이거 선물이야!! 우리 결혼한 지 딱 1년 만에 아기 천사가 찾아왔대~~~~ 곧 아빠 되는 거 너~무 축하해!!"

"정말?? 진짜야?? 너무 고마워~ 너무 고생했어~~ 집에 들어가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들어가~ 나 혼자 할 수 있어~"

"자기 다리도 그래서 어떻게 혼자 한다고~ 라이더분들 일정 꼬이면 배달 나가야 될 수도 있는데.. 내가 도와야지~ 그리고 이제 아기도 태어나면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난 우리 아이 최고로 키울 거란 말이야!!"

"그래도 무리하지 마~!! 내가 얼른 일 도와줄 알바생 구할 테니까 그때까지만 조금 힘들자.. 미안해.. 진작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나 정말 우리에게 이렇게 빨리 아기가 올 줄 생각도 못했어..."


잠시뒤 피크타임인 저녁장사가 시작되었다.


"이럴 줄 알았어~~ 라이더분들이 안 잡힌다.. 오빠! 요 앞이니가 내가 다녀올게~"

"괜찮겠어? 오토바이 위험한데.."

"괜찮아~ 나 직원으로 있을 땐 사장님보다 제가 배달 더 다녔었거든요~"

"그래도 조심해~~ 좀 늦어도 되니까 천천히!! 알았지?"

"응~ 걱정 마~!!"


우리도 민희를 따라 가게를 나선다.


원룸들이 즐비한 한 빌라촌. 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라에 도착한 주소를 한 번 더 확인 한 그녀는 음식을 들고 빌라 안으로 들어간다. 5층 옥탑에서 주문한 음식이다. 민희는 계단을 오른다. 이윽고 옥탑 마당쯤 왔을 때 문 밖으로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린다. 힙합 음악을 크게 틀고는 창문을 열지 않았음에도 문틈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담배연기들. 욕설과 웃음이 뒤섞인 듣기 거북한 시끄러운 소리들. 잠시 멈칫 한 그녀지만 음식만 전해주고 빠르게 돌아 올 생각에 옥탑문을 두드린다.


"음식 왔습니다~"

"어!! 잠시만요!! 이거 주문이 다른 거 같은데요? 우리 음식 맞아요?"

"네? 그럴 리가요~ 여기 주문하신. 꺄악~~~~!!"


음식을 확인하려 봉투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민희의 팔을 낚아채 안으로 끌어당기는 무리들. 그리고는 문을 딸깍. 잠가버린다. 그들은 낄낄 거리며 기분 나쁜 웃음은 한껏 지어보며 민희를 아래위로 훑어보기 시작하다.


"민철이 저 새끼 진짜네!! 이쁜 누나가 있다고 그렇게 얘길 하더니. 진짜 봐줄만하네?!"

"야~ 거봐~~ 저녁 피크때 시키면 쟤가 올 꺼랬잖아~~"


"저 갈게요.. 이것 좀 놔주세요.."


"가긴 어딜 가~~~~ 우리랑 조금만 놀다가~~"

"우리 다 착한 애들이에요 누나!"

"우리가 진짜 재밌게 해줄게~~~"


"아니... 아니... 저... 저 임산부예요... 제발.. 좀... 보내주세요...."


"임산부?? 야야!! 너 임산부랑 해봤냐??ㅋㅋㅋㅋ"

"아니~ 색다른 경험이겠다~~ㅋㅋㅋ"




이윽고 음악소리는 온 동네를 둥둥 울릴만한 소리로 더 크게 키워졌다. 매일 시끄러운 곳에 질린듯한 이웃집들은 하나둘씩 짜증을 섞어 창문을 꽝꽝 닫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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