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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하 Mar 28. 2023

똑같은 게임이 만들어지는 이유

풍화된 농기구는 매년 같은 농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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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아이디어가 대박이 터지면 모두 비슷한 메뉴처럼 만들기 시작합니다. 생각보다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뛰어나고 천재성이 있는 젊은 기획자더라도, 한국 게임 개발 시장에서는 그들의 아이디어가 통용되기 어렵습니다. 유교적인 관계나 사업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게임 개발 업계에서 15년, 20년 있어도 대중들이 들어본 게임을 만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1~3년 차의 아들, 딸뻘 기획자의 생각을 과장, 부장급 기획자와 개발자가 존중하는 것은 극히 드뭅니다. 주로 책임권은 그들보다 상위에 있기 때문에, 당장 해결해야 하는 결정사항만 따라야 합니다. 프로그래머와 아티스트가 게임을 많이 해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기획자도 게임을 무척 많이 해봅니다. 그러나 자신이 만드는 게임이 구린데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책임을 지기 어려워서입니다.


20대 초반에 다녔던 회사에서 만난 서버 프로그래머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좋아했고, 회사에서도 일은커녕 게임을 켜놓고 있었습니다. 마치 게임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으스대며, 가끔 술자리나 밥자리에서 아이디어를 얘기할 때 이솝이야기의 동화를 모아서 IP 게임으로 만들면 대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2010년도의 이야기입니다. 또는 어쩌다 본 인디게임에서 특정 아이디어를 발견해 이렇게 만들면 대박이라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대부분 큰 자리에서 용기 있게 말하지 못합니다. 짧은 시간으로 생각한 오만은, 왜 성공할 수 있는 것인지 스스로 설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서러스 아레나 - 디즈니

디즈니 소서러스 아레나는 디즈니와 픽사의 인기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IP 중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입니다. 이 게임은 2020년에 출시되었지만, 한국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국내 안드로이드 다운로드 수는 천만을 넘지 못했으며, IOS 마켓에서는 평가 리뷰가 2만 4천 개 정도에 그쳤습니다. 반면, 2020년에 출시된 AFK 아레나는 당시 일일 매출액 5억 원 이상을 기록하며 모바일 마켓을 장악했습니다. 이는 IP가 있음으로만 충분하지 않고, 또는 새로운 IP로도 완성도 높은 게임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블퓨처파이트 - 넷마블몬스터

이 과정은 넷마블에서 마블퓨처파이트를 서비스할 때 체득한 능력이었습니다. 강력한 마블 IP를 가진 게임 개발사들은 도전했지만, 거의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마블퓨처파이트는 3년 내에 연매출 1200~1500억을 기록했으며, 내부 게임성을 짜임새 있게 가져가기 위해 능력 있는 개발진들이 매달렸습니다. 주위에서는 소위 IP 빨 이라며 비판받았지만, 내부 인원들은 같은 마블 IP라도 실패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기 때문에 자부심을 갖고 개발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캔디크러시사가 - 킹

기획자들은 저 연차 때부터 책임을 지는 상황을 계속 경험합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쉽게 제안하지 않고 생각에 깊이를 더합니다. 단순 게임을 많이 하는 개발자들의 아이디어를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식사 시간이나 술자리에서 쉽게 얘기하던 아이디어를 자신의 사회 관계망에서 벗어나 문서화하여 외부 인원에게 전달하는 용기와 자신감이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게임 회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캔디 크러시 사가를 개발한 KING은 버블위치사가, 펫레스큐사가, 다이아몬드다이어리사가, 블라썸 블러스트 사가 등 퍼즐 게임 시장에서 블리자드보다 성과가 높은 회사입니다. 킹 캔디 크러쉬 프랜차이즈 부문 수석부사장인 티요돌트 솜스태드(Tjodolf Sommestad)는 킹 사는 세계 각지 1600여 명의 임직원이 함께 일하고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며, 출시 전 철저한 테스트 과정을 거쳐 다양한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서비스할 수 있도록 개발 과정과 시판(소프트론칭) 기간 동안 매우 엄격한 테스트를 진행하며 사용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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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나라의 게임 개발 조직에서는 이러한 환경이 힘든 것일까요? 내부에서 도전 없이 경력 년수와 나이로 게임 개발 업계에 몸담고 있는 고위층은 어느 순간 게임의 재미와 창조성보다는 매년마다 개발 스케줄이나 필수 달성 목표를 제시합니다. 이들은 가장 안정적이고 빠른 방법을 바랍니다. 당장 1년, 2년 전의 유행도 아닌 3년, 4년 전의 확실한 매출 지표로 증명된 게임을 따라 만들고 아이디어를 한 꼬집 넣습니다. 열정적이고 창의성 있는 신입 기획, 개발, 아트 인원들의 목소리는 그저 어린아이 투정으로 취급합니다.


20년 전, 게임 업계를 창조적인 열정으로 이끌었던 사람들이 현재는 풍화된 농기구가 되어 매년 같은 농사일을 하려고 합니다. 게임 장르는 매년 발전해 왔는데, 자칭 10년 전 RPG 전문가, 20년 전 액션 게임 전문가 가는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것인가요? 최근 게임들은 기술적으로 훨씬 발전했으며 화려한 아트 리소스로 중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취향을 중시하며, 콘솔 액션 게임을 만드는데 PC RPG 전문가들이 심사위원이나 어드바이저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또한, 모바일 게임의 간단한 비동기 레이드 시스템을 만들 때에도, PC 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들 얘기처럼 당장 아랑전설처럼 격투게임을 만들고, 캐주얼 모바일 게임인데 WOW 식 레이드를 개발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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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깔려 있는 유교사상이 어느 순간 게임 개발 업계의 발목을 붙잡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연예계의 글로벌 매출액을 게임 업계가 우습게 눌렀는데, 지금은 K-POP 열풍으로 연예계 글로벌 매출액이 게임 업계를 아득히 뛰어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 개발 인력들은 이미 한국 게임 개발 기술 실력이 중국에 뒤처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졌습니다. 넥슨, 네오플, 크래프톤 등 대기업에서는 실력 있는 인디 게임 개발자들을 그룹 단위로 채용하여 인큐베이팅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대기업부터 중견, 중소기업까지의 개발자들이 ‘인디게임 페스티벌’이나 ‘게임 개발 잼’에 참여하여 주말 48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고 게임을 개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회사에서 발산하지 못했던 열정과 창의성을 뿜어내기에 좋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소프트웨어의 발전과 저렴한 에셋스토어, 그리고 AI의 발전으로 소규모 개발팀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국내 시장에 증명할 필요 없이 자신의 게임을 좋아해 주는 글로벌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사업가들은 능력 있는 소규모 팀을 키워 보증금과 권리금을 받은 후, 대기업에 판매한 뒤 2년 내로 엑시스 후 퇴사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악용되는 과정 때문에 서로의 신용과 신의에 문제가 생겨 투자 업체와 개발자 간에 불편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K-POP처럼 더욱 창의적인 게임과 좋은 개발자들을 양성 및 육성할 수 있는 장치들이 한국에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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