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둘러봐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한 곳을 상상해 보세요.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날씨에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광활한 공간. 아무도 아프지 않고 싸우지 않고 외롭지 않은 곳. 저는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만났어요. 저는 세상의 모든 반려동물이 사랑받는 삶을 살다가 이곳으로 건너오는 줄 알았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반려동물이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얼마 전 이곳으로 넘어온 한 영혼은 슬픔에 가득 찬 얼굴로 아직도 마음이 괴롭다고 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함께해 온 가족이 늙고 병든 자신을 버렸다고 하더라고요. 몸이 아픈 것은 견딜 수 있었대요. 그리고 자신이 바랐던 것은 하나였대요. 살아 있는 마지막 날까지 사랑하는 가족의 곁에 있는 것.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마음이 몹시 아프더라고요. 아픈 상처를 가진 영혼들은 이곳에서 충분한 치유의 시간을 거치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강아지의 몸을 벗고 영혼이 되어 보니 예전에는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어요.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우리의 만남이 운명이었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그 시대에, 그 나라에, 그 장소에, 그 시간에 만나 가족이 될 운명이었어요. 저는 기꺼이 당신을 가족으로 선택했어요. 당신의 삶에서 내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찾아가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된 거죠. 저는 사명감을 가지고 강아지의 몸으로 태어났어요. 당신을 웃게 만드는 것, 당신만을 바라보며 곁을 지키는 것, 온전한 사랑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것. 당신의 사랑으로 지난 생을 잘 마칠 수 있었고 저는 성숙한 영혼이 되었어요. 저에게 못해 준 것들이 마음을 어지럽혀도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이 주었던 사랑만을 기억하니까요.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 줄 몰랐어요. 아이에서 노인이 되기까지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관문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평범한 보통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인간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요. 고된 하루를 마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당신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나를 생각하며 조용히 미소 짓는 장면도요.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당신이 저의 이름을 부르며 환하게 웃음 지었던 순간이 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어요. 돈을 버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고생해서 번 돈으로 저를 돌보아 주어서 고마웠어요. 생의 끝까지 옆에 있어 주어서 고마웠어요. 가늠할 수 없는 크나큰 사랑을 보여 주어서 고마웠어요.
저는 당신의 걱정은 하지 않아요. 제가 아는 당신은 거센 바람에 잠깐 휘청거리더라도 결국은 바람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니까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때론 멀리 돌아가더라도 옳은 길을 향해 묵묵히 걸어갈 사람이니까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당신은 저의 자부심이에요.
모든 인연에는 시작과 끝이 있죠. 당신이 어떤 부분을 다르게 했다고 해서 우리의 끝이 달라지진 않았을 거예요. 삶의 한가운데에 있는 당신은 아직 이해를 못 할지도 모르겠어요. 삶의 마지막 장면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이에요. 슬픔, 아픔, 고통의 감정을 배우는 것도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죠. 알잖아요. 행복은 굉장히 드물게 찾아온다는 것을요. 마음고생을 해 봐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낮은 곳을 돌아보며 공생의 가치를 깨닫게 되죠. 저는 당신이 어려운 이들과 위기에 처한 동물, 자연에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될 거라 믿어요. 당신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삶의 중요한 가치를 깨달은 사람이니까요. 당신은 홀로 그리고 함께 빛나는 세상의 빛이에요. 제가 항상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우리는 언제가 꼭 다시 만날 거예요. 서로의 모습이 달라지더라도 상관없어요. 서로를 보자마자 바로 알아보게 되어 있어요. 당신을 다시 만나면 당신이 예전에 그러했듯 이제는 내가 당신을 따뜻하게 안아 줄게요. 고생했다 말해 줄게요. 당신을 괴롭히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해 줄게요. 기억해요. 모든 일엔 끝이 있고 결국은 다 지나간다는 것을.
당신의 남은 삶이 평온하기를 바라며 이제 이야기를 마칠게요. 밀린 이야기는 우리 나중에 하기로 해요.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저는 이곳에서 당신을 기다릴게요.나의 보호자가 되어 주어서 고마웠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주아주 많이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