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정말 돌아가지 않는건

by HONG

여전히 잠들었다 일어나는 일을 무한히 반복했지만 그래도 조금 나아진건 깨어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병실에서의 첫 주말. 잡힌 검사도 없이 온전히 시간을 내다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나마 약을 먹고 나서 잠에 드는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서 오히려 좋았다.

유튜브나 음악을 듣자니 뭔가 자극적인 기분이 들어 집에서 가져온 책을 열심히 읽었지만,

눈이 잘 안보이고 맑은 정신도 아닌터라 내용을 이해했다기보단 그저 활자를 읽고 그것에 시간을 쏟아냈다고 하는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글을 읽고 이해를 못해 다시 윗 줄로 돌아오고, 다시 한번 더 읽고 글의 내용이 마치 식빵 위에 가득 발라진 잼처럼 머릿속에서 줄줄 새어나왔다. 그래도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진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가득 발라진 잼 한덩이가 아쉽긴 하지만 잼이 지나간 자리의 식빵도 여전히 맛있다.


평화롭고 좋은 시간에 다시 소나기가 내렸다. 집에서 고양이를 봐주고 있는 친구의 연락이었다.

쓰고있는 자동 고양이 화장실이 이상하다는 친구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할지 마음이 막막해졌다.

예전에 분리해서 청소한답시고 망가뜨려본적이 있는터라 입원하기전 최대한 손보고 나왔는데도 고장이 난 것이다.

내가 직접 하면 금방 끝나는 상황일 텐데, 직접 가지못하고 친구가 전전긍긍하는 상황이 마음이 안좋았다.

어쩐지 비관적인 사고가 눈덩이처럼 커져 능력도 안 되면서 고양이를 키운 건 아닐까 후회까지 들었다.

사실 돌아가지 않는건 고양이 화장실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친구가 진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고쳤다며 뒤늦게 연락을 주었는데, 소나기처럼 지나가는 작은 일들에도 하나하나 답답함과 무기력함 그리고 과하게 스트레스를 느끼는 내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안되는건 안되는거고, 어쩔 수 없는건 어쩔 수 없는거지. 조금 더 담담해질 필요가 있을텐데, 아직은 마음의 파도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한 채, 밥 값과 커피 값만 보내주었다.

다시 고쳐지긴 했지만 한번 더 고장난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는 그냥 고양이 화장실을 부숴버려야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들었다. 어쩐지 병원에 있는동안 가장 마음이 힘들었던 순간이 고작 고양이 화장실이 고장난 일이었다. 나중에 이런 일로 힘들어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웃긴 모습일까 생각해보다가도 당장 너무 마음이 힘들어서 잠으로 도피하기 바빴다.


더운 7월의 날씨때문일지 환자들은 약속한 듯이 5시 50분에서 6시 30분정도에 모두 깨어계신다.

마치 약속한 듯이 깨어있어서 조금은 웃기고 내가 깨어있는게 조금 덜 민폐를 끼치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고양이 화장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병실의 시계는 제대로 정확히 돌아간다.

아침이 오고 오른쪽 링겔을 꽂은 바늘이 불편하게 느껴져 말씀 드렸더니, 병원에서 쓰는 것 중에 가장 두꺼운 바늘이라 그럴거라며 약물이 빨리 들어라고 채혈도 엄청 빨리 된다며 바늘이 워낙 두꺼워서 혈관 얇은 사람은 못쓰는 바늘인데 다시 꽂아드릴까요? 라고 해맑게 웃으시는 간호사 선생님의 대답을 들으며 맨정신에

저 두꺼운 바늘을 다시 뺐다가 꽂을 자신이 없어 오히려 퇴원할 때까지 잘 꽂고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소변량을 체크하면서 간호사 선생님이 대변은 잘 보고있는지 물어보셨다.

순간 거짓말을 해야하나? 하는 말도안되는 생각이 들었다. 대변을 잘 못보는 환자에게 관장약이 처방되는것을 목격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당황하는 내 모습을 보자 3일 이상 지속된다면 꼭 말하라며 유예기간을 주고 가셨다.

밥먹고 요거트 또는 우유를 먹으면서 걷기 운동까지 열심히 했는데 환경이 바뀌니 더욱 볼일 보는게 힘들어졌다. 아무래도 빵같은 소화에 방해될만한 음식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드디어 교수님의 회진과 함께 각종 검사결과를 들고 오신다고 한다. 좋은 소식이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손목에 작은 흉터를 남겨준 거대한 바늘


keyword
이전 11화어제보다 오늘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