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쯤 간호사 선생님이 채혈하시면서 작은 선물을 주셨다.
오른팔에 꽂혀있던 제일 거슬렸던 채혈용 주사를 혈관을 다 써서 이제 피도 잘 안 나오기도 하고, 앞으로 채혈할 일도 줄어 그만 쓰기로 했다.
몸에 달린 가장 큰 바늘 중 하나가 제거되었다. 드디어 오른손에 온전한 자유가 생겨서 너무 기뻤다.
체온이 많이 잡혔음을 몸으로 느꼈다. 7월의 병동 창가자리는 너무 더워서 계속 자다깨기 바빴다.
더워서 땀을 비질비질 흘리면서도 오른쪽 채혈바늘의 부재가 너무 기뻐서 잘 참고 잠에 들었다.
오전의 해가 뜨고 아침식사시간이 되니 병원에 나름 작은 활기가 맴도는 게 느껴진다.
평일 오전은 역시 검사하는 것도 많아지고 내 옆 환자는 오늘이 수술날이었는지 분주하게 수술 준비를 하고 계신 것 같았다. 다른 곳에서 감마나이프 시술까지 할 수 있는걸 전부 해보다 이 병동으로 왔다고 귓동냥으로 주워들은 기억이 난다.
모쪼록 수술을 잘 이겨내기를. 그 들의 오랜 투병생활이 서로의 무던한 반응에서 묻어 나왔다.
환자분의 침상이 옮겨지고 난 뒤, 보호자로 온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은 환자분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보호자 침대에서 푹 주무시고 나서 여유롭게 짐을 정리해서 나가셨다.
아마도 중환자실로 이송될 예정이라 짐을 정리하신 거겠지.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본다.
아침식사를 먹고 나서 교수님의 회진시간이 다가왔다.
교수님은 출근용 가방을 그대로 맨 채 나에게 오셔서 호르몬 수치가 '완치'수준이라고 축하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빨리 말해주려고 급하게 온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모든 상황이 얼떨떨해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게 티가 났는지 교수님이 두 번 정도를 더 말씀해 주셨다.
물론 몇 년 간은 수치를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결과는 정상. 완치 가능성도 굉장히 높아졌다고 하셨다. 교수님께서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내셨는데 내가 무어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직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왼쪽눈의 추첨검사도 다시 해보시곤 교수님은 해맑게 웃으셨다.
'이렇게 외과 수술 한 번에 좋은 결과나 나온다고? 확실한 건가?'
너무 기뻐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괜히 나까지 너무 기뻐하면 기쁨이 달아나버릴까 봐.
오히려 조용하게 있었다. 6인실이라 다른 환자들 눈치도 조금 보였던 것 같다.
아버지가 소식을 전하러 병실 밖으로 나가자, 나도 조용히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감정이 요동치는지 어쩐지 살짝 이마가 당겨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래도 될까?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모르는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너무 좋아하면 마치 손안에 물처럼 흘러내릴 것 만 같은 기분.
신경을 너무 쓴 탓인지 살짝 당겨오던 이마가 이내 두통으로 번져왔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뜻밖의 완치 소식. 폭죽이 터지고, 엄청난 바람이 불어오고, 신나는 음악이 나오는 듯한 극적인 장면은 없었다. 대신 살짝 지끈한 머리와 조금 더운 병실의 온도를 느끼며 좋은 소식을 조용히 곱씹었다.
그래, 좋은 소식이 도망가면 어때 지금 당장은 너무 기분 좋은걸. 그래 참 다행이야.
내 맞은편 오른쪽 자리에 앉아계신 아직 인지능력이 전부 돌아오지 못하신 환자분이 나를 보고 축하한다며 씩 웃어주셨다. 어느 정도 안면이 트인 사이라 나도 웃으며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어쩐지 조금 눈치가 보였다.
그 순간 같이 계시던 보호자 할아버지께서 오늘 요양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며 냉장고에서 커피를 꺼내 웃으며 건네주셨다.
내가 먹을 수 있는지는 잘 몰라서 아버지 것만 사 오셨다며 건네주는 모습에 제대로 그분의 얼굴을 본 것이 처음이었는데 웃는 것도 아닌 우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이 기억이 남는다.
6인실의 단점일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가려주기엔 병실의 커튼이 너무나도 얇았다.
오후가 되자마자 빈 병실에 바로 환자가 들어오자 병실이 엄청나게 소란스러워졌다.
병실의 북적한 상태가 정신이 없어 아버지와 함께 병실 밖으로 나와 복도를 거닐었다.
복도를 걸으며 내가 잠도 잘 안 오고 잠귀가 다시 밝아져서 제대로 못 자겠다며 불평불만을 하자 아버지는 며칠 전만 해도 등만 기대면 잠들었었다며 웃으셨다. 아 맞다. 그랬었지. 반갑지 않은 졸음이 계속해서 찾아왔었지. 그래 그때보단 지금이 좋은 것 같아.
나의 완치 소식에 아버지의 기분이 많이 들떠 보였다. 어쩐지 그 모습에 괜히 심술부리고 싶어졌다.
나의 불평불만 리스트에 '씻기'도 추가되었다. 사실 이미 내가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리긴 했었다.
7월의 병실은 내 몸을 끈적하게 코팅시키는 것만 같았다. 머리가 길면 불편할 것 같아 입원 전에 머리를 짧게 잘랐다. 그 덕분에 아버지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차라리 점심을 먹기 전에 먼저 머리를 감아보기로 결심했다. 나도 아무래도 밥 먹기 전에 하는 게 더 편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단 뇌수술을 하고 나서 머리를 감을 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두 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절대 고개를 숙여선 안될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과하게 힘을 주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병실 복도 쪽 라운지에 앉아서 허공에서 미리 시늉을 해보았다.
아버지가 한쪽 무릎으로 나를 받히면 내가 작은 의자에 앉아 균형을 잘 잡아 안정적으로 살짝 앉아있고
아버지가 한쪽 팔로 내 목을 받히고 한쪽 팔로 재빠르게 샴푸질을 하면 내가 가만히 잘 있는 것이었다.
병실 라운지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미리 재연해 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여서 크게 웃어버렸다.
다른 간호사 선생님도 지나가면서 뭐 하시는 거냐고 물어보자 아버지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검사 결과가 잘 나온 기념으로 '머리 감기 대작전' 준비 중이라고 말하니 근처에 있던 다른 간호사 선생님들도 다 같이 웃었다.
그래, '머리 감기 대작전'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