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병원의 샤워실은 1인실로 운영됐다.
만약 남녀로 나뉜 공용 샤워실이었다면 퇴원할 때까지 씻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텐데 다행이었다.
그래도 퇴원할 때쯤에 잔뜩 떡이진 머리보단 '적당히' 떡진 머리가 되고 싶었다.
샤워실에서 나는 의자에 앉아서 상체를 최대한 아버지 쪽에 기대었다.
아버지는 한쪽 무릎으로 내 상체를 받친 채 머리만 빠르게 감겨주셨다.
와중에 거의 십여 년 만에 나를 씻겨보는 거친 아버지의 손길에 웃음이 터져서
지금 강아지를 씻기는거냐며 깔깔 웃으니 아버지께서 코에 물들어간다며 애써 웃음을 참으시는 게 꽤 웃겼다.
'머리 감기 대작전'이 끝나고 아버지는 흠뻑 젖었지만 그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으로 병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왼쪽 눈의 붓기는 아마 한 달은 넘게 지속될 거라고 하셨다.
흉터 크림과 선크림을 잘 발라줘야 흉이 최대한 덜 진다며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여성이라 더욱 안타깝게 생각하셔서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신 것 같지만,
글쎄 얼굴에 아주 멋있는 삶의 흔적이 새겨졌다고 생각하니 나름 그 흉터도 멋있게 느껴졌다.
마치 바이킹이나 소년만화의 주인공처럼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재밌는 무용담처럼 여겨졌으면 좋겠다.
아직은 눈을 뜨면 왼쪽 눈에 통증이 있었다. 정면을 똑바로 보면 복시현상도 겹쳐져서 더 불편했다.
안대를 쓰고 다니는 것을 권유해 주셨는데 생각만 해도 답답하고 귀찮아져서 생각을 멈추었다.
짝눈 상태로 거의 2주를 살다 보니 짝눈이 굳어질까 봐 조금 무서웠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오후에 코 안에 깊숙하게 박혀있는 마지막 패킹도 제거를 하러 갔다.
이번에는 정말 아프지 않다고 해서 그렇게 믿고 갔지만 역시나 아프지 않을 리가 없지.
제거하는 내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눈물의 대가로 좋은 소식을 돌려받았다.
뼈가 잘 붙은 것 같다며 이제 패킹을 완전히 제거했으니 완전히 뼈가 붙을 때까지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제 지지할 수 있는 패킹마저 떼서 그런지 교수님은 당부의 당부를 거듭하셨다.
병실로 올라가는 길에 웃다가 코를 좀 세게 먹었는데 내심 엄청 긴장이 되었다. 혹여라도 안에서 터졌을까 봐 코에서 물이 나오진 않는지 계속 코 밑에 손가락을 갖다 대곤 했다. 완전히 아물기 전까진 큰 감정표현도 조심해야겠다고 느꼈다.
당장 내일에 퇴원이라 그런 걸까? 지독하게도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병실 침대에서 패드를 눕혀놓고 볼 수 있는 방법을 익혀서 누워서 영상만 엄청나게 봤던 것 같다.
하도 앉아있거나 누워있다 보니 허리와 엉덩이도 아프고 머리도 잘게 아파왔다.
다리라도 안 다쳤으면 좀 돌아다녔을 텐데, 하긴 코로나 덕분에 움직일 수 있는 범위도 한정적이라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집중해서 무언갈 하다 보면 꼭 머리가 아파온다. 후유증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퇴원 후에 진통제를 줄 테니 많이 아프면 꼭 먹어야 된다며 간호사 선생님께서 당부를 해주셨다.
나를 보면 의료진이 이것저것 당부를 하는 걸 보니 정말 퇴원이 눈앞에 다가왔음이 느껴진다.
퇴원해서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 할 일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조금 막막해졌다.
보험처리 같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 현실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창밖에 흘러가는 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보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그리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루하기만 했는데 끝이 보이자 조금 아쉬운 기분마저도 들었다.
내일부터는 또 다른 시간을 견뎌내야 하겠지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만큼이나 버텨냈다는 사실이 조금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병실의 느린 하루. 그 느림 속에서 조금씩 회복하고 웃고 견뎌내는 사람들이 있다.
병원 생활이 순전히 고통뿐이었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나를 돌봐준 수많은 손길과 비로소 그때서야 개선된 아버지와의 관계가 있다.
내일이면 이 병원을 떠난다. 지금처럼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