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분명 장에 염증이 있었다. 맛있는 걸 포기하는 건 아쉬웠지만, 음식만 조절하면 되니 나름 할 만 했다. 나중엔 제법 익숙해지기도 했고, 오히려 건강에도 좋다며 긍정 회로를 돌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무의식을 컨트롤해야 하다니! 어쩌다, 그리고 언제부터 심리 문제로 넘어갔을까?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따사로운 햇살과 잔잔한 음악. 카페에서 동료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멍하니 응시하고 있던 카페 유리 문을 열고 동료가 들어왔다. 회사에서 매일 보는 동료지만, 회사 밖에서 보니 새로운 느낌으로 반가웠다. 회사에선 항상 쫓기듯 수다를 떨어야 했기에, 오늘만큼은 마음먹고 수다를 떨기로 했다. 우리는 별별 이야기를 다 했다. 퇴근하고 뭐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요즘 고민은 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등. 카페 밖이 어둑해질 때쯤, 동료는 요즘 자신이 공황장애로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동료의 솔직한 고백에 힘입어, 나는 화장실이 주변에 없으면 불안해진다는 비밀을 털어 놓았다. 동료는 깜짝 놀라며 내 손을 잡았다. 자신 역시 화장실 문제로 공황이 온 거라며, 자신과 내가 비슷한 증상인 것 같다고 했다. 이럴 수가! 동료는 자신의 심리상담사를 나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고 했다. 마침 심리상담을 고민하던 차라, 바로 예약을 잡아 달라고 했다. 선생님은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어서,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심리상담 첫날, 나의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 왜 아파졌고, 지금 어떤 상황이고, 그로 인해 무기력해졌고, 그래서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노력을 했고 등등. 내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어쩐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깟 게 뭐 대수냐는 듯, 상담하다 보면 훨씬 더 암울한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다는 듯. 나는 진심으로 괴로운데, 철부지의 투정쯤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서 억울했다.
“1년 중 어느 상황에 그런 때가 있는 게 아니라, 365번의 고통이 있는 거예요.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괴로워요. 지금 컨디션은 어떤지, 출근은 할 수 있을지, 점심은 먹으러 갈 수 있을지,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니, 분 단위로 괴로워해요.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아요, 매일, 매 순간. 아무 걱정 없이 온전히 편안한 하루를 보내 본 게 언젠지도 모르겠어요. 불안하지 않은, 보통의 하루를 이젠 상상할 수조차 없어요.”
나의 진중한 고백에 선생님은 그제야 놀란 듯했다. 언제부터 그랬냐며, 그 당시에 제일 힘들었던 게 뭐냐고 물었다.
“문제의 원인을 저에게서 찾는 게 제일 괴로웠어요. 나를 괴롭힌 사람을 탓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던 거죠. ‘내가 일을 더 잘했더라면, 내가 팀장님을 더 돋보이게 해 주었더라면, 내가 팀장님의 지랄맞음을 더 감당해 냈더라면…’ 아무리 팀장님이든 회사든 탓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제 탓을 하는 편을 택했어요. 차라리 그게 속 편했거든요.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그땐 그랬어요.”
“정말 힘드셨겠네요.”
“네, 힘들었어요.”
나는 남의 일처럼 대답했다.
“이렇게 얘기해 보니 어때요?”
“그 시절을 떠올리면 펑펑 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덤덤하네요.”
“좋은 거예요.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어요.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거니까, 앞으로 잘 이겨낼 거예요.”
듣고 보니 확실히 그때보다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 나에게는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그래, 앞으로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
Note. 심리상담 Tip
심리상담은 형태가 다양하다. 먼저, 대면 상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전문 센터에 방문하는 것. 보통 시간당 10만 원 선으로 조금 비싸지만, 각종 검사를 함께 받을 수 있고, 필요시 병원을 연계해 주기도 한다. 두 번째로, 카페나 스터디룸을 이용하는 프리랜서에게 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프리랜서는 상담만 하는 대신, 7만 원 선이라 가격 부담이 덜하다.
상담사와 직접 마주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비대면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트로스트’ 같은 앱을 이용하면, 화상 통화, 전화, 카톡 등 다양한 상담 형태 중 나에게 맞는 방식을 고를 수 있다. 실시간 소통도 꺼려진다면, 질문지에 답변을 작성해서 제출하고, 다음 날 피드백을 받는 ‘마인딩’ 같은 서비스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심리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가 지루한 듯한 반응을 보이면 신경이 쓰였는데, 글로 진행하는 상담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방식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지자체에서 무료로 심리상담을 지원해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직 거부감이 느껴진다면, 스스로 마음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어떤 반응을 원했을까?’ 같은 고민을 해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풀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