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기 싫은 거야 모든 직장인이 마찬가지겠지만, 그날은 유독 출근하기가 싫었다. 한 달에 한 번, 전사 회의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대회의실에서 화장실까지는 10초도 안 걸리지만, 미팅 중에 화장실을 가기 어렵겠다고 생각하니, 출근하기도 전부터 불안했다.
회의실 문 바로 앞에 앉으면 괜찮지 않을까? 미리 배 아플 수도 있다고 말해 둘까? 미팅 중에 아무 일이 안 일어나서 꾀병인 거였냐고 하면 어쩌지? 아예 미팅을 빠질까? 출장도 아닌데 왜 빠지냐고 하면 뭐라고 하지? 그냥 오전 반차를 낼까? 전사 회의 있는데 갑자기 반차 낸다고 뭐라 하려나?
회사에 도착해서 가만히 미팅을 기다리고 있으니 식은땀이 났다. 이깟 게 뭐라고. 괜찮을 거라고 속으로 되뇌어 봐도 좀처럼 마음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팀원들에게만 상황을 공유한 채, 미팅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다른 팀 사람들이 우리 팀원들에게 나의 행방을 물을 것 같았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어찌저찌 찾아온 점심시간. 속이 안 좋아서 편의점 죽으로 점심을 대신하겠다고 했다. 팀장님은 다이어트를 위해 도시락을 싸 왔는데 마침 잘 됐다며,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죽을 먹는 나를 보며 팀장님은 장이 그렇게 안 나아서 어떡하냐고 물었다. 예의상 건넨 안부 인사에 정적이 찾아왔다.
“화장실을 못 가면 불안해져요.”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동안 차멀미다 뭐다 했지만, 사실 아니에요. 주변에 화장실이 없으면 불안해서 그런 거예요. 전에 전무님이랑 미팅하러 갔을 때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화장실을 못 간다는 생각에 불안해져서 그랬던 거고요. 오늘 아침에도 그래서 미팅 못 들어갔어요. 그동안은 저 혼자만 참고 견디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더라고요. 오늘 아침에 전사 회의 빠질 때 팀원들에게 거짓말을 시키는 것 같았어요. 미안한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 같아서, 수치스럽지만 사실대로 말씀드려요.”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팀장님은 별것도 아닌데 왜 비밀로 했냐며, 진작 말하지 그랬냐고 했다. 오히려, 자신은 더 수치스러운 경험이 있었다며,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무렇지 않게 반응해 줘서 다행이었다. 덕분에 끙끙 앓고 있던 속이 조금 후련해졌다.
팀장님은 사실 조금 오해하고 있었다며, 말 안 하면 오해하게 되고, 말해 줘야 배려해 줄 수 있으니 팀원들에게도 말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팀장님은 여자라 그나마 말할 수 있었지, 남자 동료들에게는 아무래도 좀 수치스러웠다.
그래도 말해 보자니 어떻게 말할지 고민됐다. 일단 사람들을 다 모아 놓고 ‘아아, 공지 사항이 있습니다. 저 배 아픕니다.’ 이렇게 말해야 하나? 여차저차 말했는데 ‘예. 그런데요? 어쩌라고요?’라고 반응하면 어쩌지?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나라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를 것 같았다. 놀라기도, 더 캐묻기도 미안할 텐데, ‘아.. 네.’ 외에 무슨 할 말이 더 있을까. 상상의 나래를 한참 펼치다가 미리 대본을 쓰기로 했다.
동료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제가 뜬금없이 이런 얘길 꺼내서 여러분은 어쩌라는 거지 싶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 큰 오해가 쌓이기 전에 한 번쯤은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을 꺼냅니다.
저, 똥 못 참습니다.
차멀미 때문에 출장을 못 가는 게 아니라, 화장실이 없으면 불안해서 그랬던 겁니다. 매일 배가 아파서 몸에 힘이 없고 예민합니다.
평소엔 멀쩡해 보였겠지만 티 안 내려고 하는 겁니다. 대학병원도 가고, CT 촬영도 하고, 한약도 먹고, 영양제도 먹고, 이겨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점심도 맨날 순한 것만, 가까운 곳에서만 먹습니다.
배려해 달라는 것 같을까 봐 최대한 참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차가운 것 먹고도 괜찮지?’, ‘오늘은 왜 차 안 탔는데도 힘들어하지?’ 하고 오해하실까 봐서 이야기합니다. 장소, 음식, 시간, 사람, 컨디션 등에 따라 다를 뿐 꾀병은 아님을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간 제 역할을 대신해야 할 때도 있었을 테고, 곤란한 상황도 있었을 텐데,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두 번 세 번 읽어가며 대본을 작성했다. 직원들의 캘린더를 보며 언제 말하면 좋을지 계획을 세웠고, 틈만 나면 기회를 노렸다. 식사 후 찾아오는 정적, 여유로운 티타임, 미팅 전 수다, 몇 번이고 타이밍은 찾아왔지만 결국 치욕스러움에 말하지 못했다.
그 뒤로 시간이 많이 지났다.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얘기한 적은 없지만, 동료들은 어렴풋이 아는 눈치였다. 팀장님이 얘기한 건지, 대충 유추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다 연말 송년회 자리에서 각자 올 한 해 가장 감사한 일과, 가장 잘한 일을 얘기해 보기로 했다. 돌고 돌아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됐다. 나는 올해 가장 감사한 일로 아프게 된 것을 꼽았다. 아픈 덕분에 다른 사람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게 되었고,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가장 잘한 일로는 지난 팀에서 악착같이 버티지 않고 포기한 것을 꼽았다.
“어른이라면 어떠한 고난도 견뎌야 할 것 같았고, 도망치는 건 패배자들이나 하는 거로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견디지 못하고 팀을 바꾸었는데, 그 뒤로 너무 행복해졌어요. 지난 팀에서 벗어난 것뿐 아니라,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너무 감사해요.”
지난 시절이 떠오르면서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