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Zombie Fires (좀비 화재)

책임감있는 태도

by 캐나다 마징가

물 위에 살얼음이 얹히고, 대지는 눈으로 덮여 고요히 잠든 듯한 겨울, 모든 것이 멈춘 듯 보이지만, 피트랜드(Peatlands) 어딘가에서는 작은 불씨 하나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살아남아 타오르고 있다.


피트랜드(Peatlands)란, 식물들이 습한 환경에서 자라다 죽고, 산소가 부족한 조건에서 완전히 썩지 않은 채로 수천 년에 걸쳐 겹겹이 쌓여 형성된 땅이다, 전 세계 토양의 탄소의 30% 이상을 저장하고 있어 지구 기후를 조절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피트랜드 분포를 가진 나라 중 하나이다. 전체 피트랜드 면적은 약 120만 제곱킬로미터로 캐나다 전체 국토의 약 12% 이상에 해당할 만큼 광범위하며, 대부분은 북부와 중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ChatGPT Image Jul 15, 2025 at 08_41_59 PM.png Peatland in Canada

겨울 동안 겉은 눈과 비로 젖어 있는 듯 보이지만, 피트랜드(Peatlands)의 내부는 마르고 부패되지 않은 식물층으로 구성되어 있어 오히려 불에 잘 타는 연료가 된다. 이 땅에 불씨 하나가 스며들면, 그 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 깊은 곳에서 천천히, 그리고 끈질기게 타기 시작한다. 산소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도 피트는 마치 천천히 연소되는 숯처럼, 불씨를 오래도록 품고 있다. 이 불씨는 겨울 내내 땅속 깊은 곳에서 은밀하게 유지되다가, 봄이 되어 지면이 마르고 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나면서 순식간에 대형 산불로 번지게 된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zombie fire (좀비 화재)’라고 부른다. 겉으론 꺼진 듯 보였지만 되살아나며 다시 불길을 일으키는 모습이 마치 좀비와 같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전문용어로 overwintering fire 혹은 holdover fire라고 부른다.


이러한 화재는 이미 꺼졌다고 판단한 지역에서 다시 시작되기에, 초기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불씨가 지하 깊숙이 존재하는 탓에, 일반적인 육안이나 열 감지 장비로도 잘 포착되지 않는다고 한다. 기후 변화는 이러한 피트랜드를 더욱 건조하게 만들고 있고, 그러한 환경에서 불씨가 살아남을 가능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 2025년 한 해 동안 캐나다 서부에서만 3,000건이 넘는 산불이 발생했으며, 그중 상당수가 바로 이런 좀비 화재로 인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 면적은 500만 헥타르에 달하며, 이는 벨기에 전체 국토 면적과 맞먹는 규모다.

experimental-peatland-fire-Sophie-Wilkinson-1.jpeg Photo: Sophie Wilkinson, McMaster University

산불은 더 이상 외진 숲에서만 벌어지는 재난이 아니라, 그 연기는 국경을 넘어 미국 중서부와 동부 도시들까지 퍼져나가며, 대도시의 하늘을 뿌옇게 뒤덮고 건강 경보까지 일으키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산불이 기후변화 자체를 더욱 가속화시킨다는 점이다. 피트랜드 (Peatlands)는 본래 탄소를 흡수해 저장하는 탄소 저장소의 역할을 하지만, 한 번 불에 타기 시작하면 수천 년간 가둬두었던 이산화탄소가 단기간에 대기로 방출된다. 실제로 2023년 산불로 인해 배출된 탄소는 약 2억 5천만 톤으로, 이는 캐나다 전체 온실가스 연간 배출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결국, 산불이 배출한 탄소는 다시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들고, 이는 또다시 폭염과 가뭄을 불러와 더 많은 산불을 촉발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38989454502_ccb67be1e8_b.jpg Map by Levi Westerveld


우리는 일상 속에서 좀비 화재와 같은 수많은 꺼진 줄 알았던 불씨들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사회적 불평등, 전쟁, 증오, 혐오 범죄, 세대 간 갈등… 겉으로는 잠잠해 보이지만, 실은 어느 순간 다시 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 불씨는 어쩌면 우리가 미뤄온 선택들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눈앞의 편리함에 눈이 멀어 본질의 균형을 흔들고, 아직은 괜찮다는 안일함으로 시간을 흘려보낸 우리의 태도, 그리고 꺼진 듯 보이는 문제를 외면하며 진정한 변화의 책임을 다음 세대로 넘겨버린 우리의 삶이 만들어낸 결과일 수 있다. 겉으론 멈춘 듯 보이고, 꺼진 줄로만 알았던 문제들이 다시금 살아나 재앙이 되는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언젠가 누군가가 해결해 주길 바라는 태도로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 기후 위기든 사회적 갈등이든, 우리가 외면한 채 덮어둔 문제는 언젠가 더 큰 재난으로 되돌아온다. 이제는 그 모든 보이지 않는 곳에 귀를 기울일 시간이다.

IMG_1291.jpg Beautiful British Columbia (BC 주의 공식 슬로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