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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우엔드의 미학

The Low End Theory

by 캐나다 마징가

토요일 아침, 친구와 함께 놀스밴 피어 근처 커피숍에 다녀왔다.
창밖으로는 바다가 잔잔하게 반짝였고,

여름 햇살로 가득한 가게 안은 사람들로 제법 북적였지만, 분위기는 차분했다.

바 테이블 구석에 자리를 잡고, 훌륭하게 잘 내린 커피를 마시며
좋은 커피 원두에 대해, 스피커의 위치와 공간의 잔향,
그리고 라이카 카메라의 색감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대단한 대화가 아니여도, 그런 이야기들은 언제나 나쁘지 않다.

어느 순간, 배경음악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사람들의 목소리, 커피 머신 소리, 접시들이 부딪히는 일상적인 소음들 사이로

낮은 베이스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존재감으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임에도 음악이 조화롭게 스며드는 것을 보며, 이 커피숍 주인이 얼마나 디테일에 민감한 사람일지 상상했다.

IMG_1555 3.jpg 커피숖 벽면의 장식들

그때, 벽 한켠에 걸린 LP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보니, 1991년에 발매되었던 A Tribe Called Quest의 The Low End Theory였다.

음악을 다시 듣지 않아도 기억은 생생하게 떠올랐다.

Check the Rhime의 리듬, Jazz (We’ve Got)의 베이스 라인,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던 어떤 차분함과 화려하진 않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저음들, 그리고 지나간 시간이 그 음반 위에 얇게 덮여 있었다.

이 앨범이 발매되던 시절, 힙합은 점점 더 빠르고 자극적으로 변해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재즈의 여백과 묵직한 저음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 시절의 우리에게 Low End는 단순한 음역대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었고, 생각해 보면, 그 앨범은 나에게 하나의 기준 같은 것이었다.


문득 지금의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많이'가 기준이 되는 하이엔드(High End)시대를 살고 있다.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드는 것이 하나의 목표처럼 반복되고, 모두가 앞서기 위해 쉼 없이 달린다.

하지만 그렇게 올라갈수록,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이는 건 많아졌지만, 들리는 건 줄어든 느낌이고, 속도가 붙을수록 깊이는 얕아지고, 소리는 커졌지만 울림은 작아졌다.

IMG_1615 2.jpg Lonsdale Pier

The Low End Theory는 물질적 성장이 추앙받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과시보다는 진심, 속도보다는 리듬, 그리고 자극보다는 여운과 같은, 드러내기보다 스며드는 삶의 방식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해 주었다. 조용하지만 자신만의 리듬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단단한 밀도와 깊이가 있다. 눈에 잘 띄는 것들이 늘 오래가는 것은 아니다. 가장 오래 남는 소리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들려온다. 소란한 것들은 순간을 장악할 수는 있지만 쉽게 잊힌다. 반면에, 묵직한 울림은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조용히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다.


로우엔드의 미학. 그것은 단지 음악의 취향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우리도 함께 속도를 높이며 살아가고 있지만 어쩌면 가장 필요한 건 볼륨을 낮추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모든 걸 다 드러내면서 과시할 이유도 없고, 모든 걸 빨리 이룰 필요도 없다.

잠시 걸음을 늦추고, 세상의 소음을 줄이고, 나만의 리듬을 지키는 삶은 게으름이 아니라, 깊이 있는 삶을 위한 선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고 느껴질 때 볼륨을 조금 낮추는 것이 결코 뒤처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음악에서도 중요한 건, 꼭 고음만은 아니니까...
그리고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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