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는 소중하다
9월의 마지막 날, 캐나다의 거리는 오렌지빛으로 물든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사람들은 오랜지 색의 셔츠를 입는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행사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셔츠에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 담겨 있다. - 모든 아이는 소중하다(Every Child Matters).
오렌지 셔츠 데이는 한 원주민 소녀의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여섯 살의 어린 필리스 웹스태드는 할머니가 정성껏 사 준 새 오렌지 셔츠를 입고 들뜬 마음으로 기숙학교에 갔다. 그러나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교사는 그 셔츠를 빼앗아 버렸다. 그녀는 훗날 그 순간을 “나는 아무 의미 없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라고 회상했다. 아이의 정체성과 존재 가치를 부정당한 순간이었다.
그와 같은 일은 결코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수많은 원주민 아이들이 캐나다 전역의 기숙학교(Residential School)로 보내졌다. 정부와 교회가 운영한 이 학교들은 아이들을 문명화한다는 명목으로 세워졌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을 부모와 공동체로부터 강제로 떼어내는 정책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언어를 쓰지 못했고, 고유한 노래와 춤, 의식을 잃어야 했다. 머리카락은 잘려 나갔고, 전통 이름 대신 영어 이름을 강제로 부여받았다. 모국어를 쓰다 들키면 매를 맞았고,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모든 행위는 금지되었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것은 배움이 아니라 정체성의 말살이었다.
신체적 학대와 정서적 폭력은 일상이었으며, 일부 아이들은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들의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채 땅속에 묻혔고, 영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캐나다 곳곳의 기숙학교 부지에서 발견된 수백, 수천 개의 무덤들은 이 참혹한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그 아이들에게서 빼앗은 것은 단지 셔츠 한 장이 아니라 공동체와 문화, 그리고 삶 자체였다.
9월 30일, 많은 캐나다인들은 오렌지 셔츠를 입는다. 그것은 그 역사의 과오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며,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렌지빛은 기억과 화해, 그리고 희망을 품은 상징이 되었다. 이날은 과거를 추모하는 동시에 오늘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다. 과거, 캐나다 정부에서 원주민들에 대한 강압적인 동화정책에서 발생한 과오들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존중받지 못한 사회에서는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역사는 이미 알려주었다.
한국에서도 노키즈 존과 같이 어른과 아이 세대간의 갈등을 보게된다. 아이들은 때때로 미숙한 모습으로 세상 앞에 서지만, 그것은 잘못이 아니라 성장의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끌어 주느냐에 달려 있는 듯 하다. 어른은 아이들에게 규칙과 존중, 함께 살아가는 길을 보여 주어야 하고, 아이들 역시 자신이 존중받는 존재임을 깨닫는 동시에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쌓인 배움은 훗날 책임 있는 어른으로 자라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오렌지 셔츠 데이가 전하는 메시지도 다르지 않다. 존중받는 사회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른의 선택과 행동이 오늘을 세우고, 아이의 배움과 다짐이 내일을 완성한다. 기억을 잊지 않고,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며, 서로를 존중하는 책임을 나눌 때, 우리는 비로소 아이와 어른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