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를 지닌 말 한마디
캐나다의 서부 해안에 위치한 아름다운 브리티시컬럼비아 (British Columbia) 주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유엔 원주민 권리 선언(UNDRIP)을 자국 법체계에 공식 반영한 곳이다. 선언에 따르면 원주민은 자신들의 땅, 문화, 자원, 그리고 생명체와의 관계에 있어 자율적 권리를 지닌다. 이는 국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협력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동의 의사결정 체계를 지향하는 상징적 약속이었다. 그러나 선언이 법으로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실천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듯하다.
지난 6월, 한 마리의 회색곰(Grizzly Bear)이 밴쿠버 인근의 섬, 텍사다 아일랜드(Texada Island)에서 사살된 사건은 그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텍스(Tex)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 회색곰은 파월 리버 인근 육지에서 2km가 넘는 바다를 헤엄쳐 텍사다 섬에 도달했다. 텍사다 섬은 본래 곰과 같은 포식 동물이 존재하지 않는 생태계였기에, 그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경이로움과 동시에 불안을 안겼다. 보존 당국은 텍사를 두 차례 본토로 이송했지만, 그는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 이 반복되는 방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닌, 곰 스스로의 생태적 탐색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텍스의 존재를 다르게 바라본 이들이 있었다. 지역 원주민 공동체인 시샬(Shíshálh), 틀라아민(Tla’amin), 호말코(Homalco) 퍼스트 네이션은 이 호기심 많은 곰을 단지 통제해야 할 위험 요소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곰을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메신저로 여기는 원주민들은 텍스(Tex)를 자신들의 땅으로 평화롭게 이송하고자 직접 나섰고, 정부와 협력하여 계획을 수립했다. 인도적이고 존중 어린 접근이었다. 덫을 설치하고, 이송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이 계획은 실행 직전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정부의 최종 승인은 지연되었고, 결국 곰은 누군가의 총에 맞아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보존 당국은 공식적으로 곰을 사살할 계획이 없었다고 밝혔지만, 구조적 지연과 조율 실패는 결국 평화로운 대안의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 텍스의 죽음은 공존의 기회가 무력화된 순간이었다. 곰이 위험하다는 명분은 결국 가장 손쉬운 해결책으로 귀결되었고, 그 안에는 법보다 앞서 존재했어야 할 신뢰와 존중이 빠져 있었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선언과 현실 사이, 책임과 회피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공존을 말하면서도, 진짜 공존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끝까지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정책은 있었지만 실행은 없었고, 의지는 있었지만 조율은 부족했다.
그 공백 속에서 생명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침묵과 안타까움뿐이다.
법과 선언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나누는 말 한마디에도 그에 걸맞은 책임이 따라야 한다. 진심 없는 말은 순간의 이익을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결국 그 가벼움이 드러나고 만다.
얄팍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에 앞서 마음을 담아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진심이 오히려 불편하게 여겨지는 시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성의 없는 농담이나 표면적인 친절이 오히려 더 환영받고,
진심 어린 말은 무겁고, 지나치고, 때로는 부담스럽게 여겨진다.
진심이 어울리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진심을 지키는 태도는 더욱 빛나게 마련이다.
가볍게 던져진 말들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그 속에서 무게를 지닌 한 마디는 사람의 마음을 오래 머물게 한다.
한 그리즐리 베어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우리에게 앞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한 공존을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하나의 상징과 같은 사건이 되었다. 총알보다 더 깊은 상처는, 지켜야 할 약속 앞에서 침묵하고 머뭇거렸던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또 다른 텍스가 우리의 선택 앞에 나타날 때, 우리가 과연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는, 바로 지금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