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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을 지키는 노력

모닝 커피

by 캐나다 마징가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모닝커피를 마셨다. 그는 캐나다에 가족을 두고, 한국에서 영화배우로 일하며 두 나라를 오가는 삶을 오래 이어오고 있다. 멀리서 보면 자유롭고 유연해 보이는 삶이지만, 요즘은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간다고 했다.

"비행기를 타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가끔은… 산소가 부족한 공간에 계속 노출되어서 그런지 뇌가 쪼그라드는 것 같아. 예전 같은 감성들이 이제는 좀처럼 올라오질 않아.”

그가 농담처럼 건넨 말이었지만, 내 마음에 꽤 오래 남는다. 요즘 나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레이크 루이스(Lake Louise) 같은 대단한 풍경에 감동하고, 누군가가 살아온 고단한 인생사나 성공담들에 괜스레 울컥하기도 했다. 그렇게 거창하게 갈 필요도 없이 산행길에 핀 들꽃만 봐도 마음이 들뜨고, 낯선 길에서 길을 잃는 일조차도 설렘으로 다가오던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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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감정들이 무뎌졌다. 웬만한 일에는 감동을 받지도 않고, 사람을 만나도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친구와 커피를 마시는 동안, 감성이 줄어든 것이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세상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반복되는 하루, 익숙한 사람들, 예상 가능한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둔감해지고 있음을 공감하였다.


이러한 익숙함은 때론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감각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새로움이라는 단어가 삶에서 점점 사라지고, 아무 감흥 없는 날들이 계속될수록, 마음은 서서히 무표정한 일상을 닮아간다. 감탄도, 설렘도, 울컥함도,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아득해진다. 두근거릴 필요 없이 하루를 넘기는 날들이 이어지다 보면, 그 익숙함은 그렇게, 아주 조용히 마음을 무디게 만든다.


요즘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삶을 판단하는 기준을 물질과 성공에만 두는 듯하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얼마나 가졌는지, 어떤 지위에 있는지를 중심으로, 그것이 마치 세상의 당연한 이치인 양 말하고 행동한다. 마치 물질적 성취와 사회적 지위가 삶의 최종 목적지인 듯 보일 때도 있다. 그들은 더 안정적인 현실 안에서 답을 찾은 듯 행동하고,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말하며, 무뎌진 게 아니라 강해진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어쩌면 그 무뎌짐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틀 속에서 진심으로 편안해 보이거나 내면을 채울 만큼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찾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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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감성은 사용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퇴화되기 마련이다. 물론 우리는 매일 새로운 자극과 특별한 순간만을 기대하며 살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익숙함에 안주한 채, 감성을 스스로 소모시키고 잃어가는 삶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감성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잊지 않으려는 마음과 그것을 지켜내려는 의지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감성이 사라진 게 아니라 내가 천천히 마음을 닫기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눈물도, 공감도, 설렘도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면, 자신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자연스레 내 주변, 나아가 내가 속한 사회의 희로애락에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 세대가 공감하는 마음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 여파가 젊은 세대에게 더 큰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익숙함에 길들여진 삶이 우리의 감각을 흐리게 할 수는 있어도, 그 속에서도 여전히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사람다운 내면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진심 어린 감동은 언제나 그 마음에서 다시 시작되며, 삶은 때때로 그런 조용한 떨림 하나로도 새로운 방향을 찾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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