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기준을 다시 써야 할 때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이자 극작가, 그리고 문학 평론가였던 T.S. 엘리엇은 "미숙한 시인은 모방하고,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가 말한 ‘훔친다’는 행위는 단순한 표절이 아니라, 타인의 작품을 자기 언어로 해석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로 탈바꿈시키는 창조적인 행위를 언급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창작자의 여정은 언제나 누군가의 흔적 위에서 출발하며, 그 흔적 위에 자신만의 길을 내는 과정이며 예술의 본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예술의 시작을 모방에서 찾았다. 그에게 모방은 현실을 단순히 베끼는 것이 아니라, 관찰을 통해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는 창조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인간은 그렇게 현실을 모방하며 그 위에 상상력과 감정을 가미하면서 미술, 문학, 음악, 연극 등 다양한 예술로 발전시켜 왔고, 지금도 모방은 여전히 창작의 토대가 되고 있다.
오늘날 이 전통적인 창작 방식을 가장 충실히 따르고 있는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아니라 AI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AI가 그려낸 그림, 작곡한 음악, 써 내려간 시 앞에서 창작의 본질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성찰은,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서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인간은 과연 언제부터 창작자로 불릴 수 있었는지, 그 출발점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모든 문장은 24개의 한글 자모나 26개의 영어 알파벳으로부터, 모든 음악은 12개의 음으로부터 만들어지지만 이 위에 더해지는 창의적인 힘이 수천수만 개의 다른 작품들을 탄생시킨다. 결국 인간의 창작은 수많은 조각들을 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AI 또한 마찬가지로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 축적된 기억을 바탕으로 새로운 결과물을 생산하기에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인간의 창작과 AI의 창작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작품에는 영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AI의 결과물에는 표절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인간과 AI 사이의 가장 큰 차이가 의도와 의식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억은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지고, 무의식과 뒤섞이기도 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감정과 해석이 덧입혀진다. 반면, AI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어느 시점에, 누구의 데이터를, 어떤 방식으로 학습했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그 너무 정확한 기억이 때로는 창작으로서의 신뢰를 얻는 대신, 오히려 창의성을 의심받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기억과 모호한 감정 위에 창작을 쌓고, AI는 정밀한 데이터와 체계적인 구조 위에 창작을 얹는다. 그리고 오히려 그 정밀함이 인간의 눈에는 불편함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AI가 만든 결과물에 불편함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어쩌면 그것이 창작의 고통 없이도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창작의 고통 없이 완성된 무언가가, 정성과 감정을 담아 만든 나의 작품보다 더 주목받을 수 있기에 이는 인간으로서의 창작자의 정체성을 흔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창작은 고통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이며, 새로움에 대한 기쁨이며, 다른 이와 연결되기 위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의 표현과 언어는 인간만의 것도, AI만의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AI를 감정이 없는 기계로만 보아왔다. 그래서 감정이 없는 존재가 예술을 할 수는 없다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감정이 창작의 유일한 자격이 될 수 있을까? 하루에 다섯 곡을 찍어내듯 작곡하는 사람도 있고, 수익을 고려해 템플릿에 따라 책을 쓰는 작가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결과물이 감정 없고 의미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AI가 만든 작품도, 다른 방식의 창작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우리는 창작의 기준을 다시 써야 할 시대에 살고 있다.
AI는 단순히 인간을 흉내 내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창작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결합하고, 표현하는 새로운 창작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처럼 보인다.
실제로 영감과 표절의 경계는 과거부터 늘 모호했다. 그리고 그 모호함 속에서 인간은 늘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냈다. 이제 AI도 그 해석의 과정에 함께하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AI를 바라보며 기술 그 자체보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의 불안과 마주하고 있다. 그 불안은, 고통 없이 탄생한 무언가가 정성 들여 만든 내 창작물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하지만 창작의 의미가 주변환경과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AI는 단순히 입력된 정보를 베끼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정확하게 기억할 뿐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기억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이다. 우리는 지금, 인간은 AI와 함께 창작의 서사를 써 내려가야 할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새로운 창작은 더 이상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써 내려가는, 열린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