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결, 마음의 깊이, 관계의 온도
나는 일의 특성상,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한국인, 중국인, 이란인, 미국인, 캐나다인…
국적은 달라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일구어낸 사람들이다.
그들을 마주할 때면, 각자의 배경은 달라도 성공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그 안에는 각자가 지나온 저마다의 시간이 깊게 배어 있음을 보게 된다.
어떤 이들은 눈빛과 말투에 단단한 자신감을 담고 있다. 한마디 말에도 굳은 결심과 흔들림 없는 자부심이 느껴지고, 그 안에는 수많은 도전과 실패, 감내와 극복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우월감이 갑질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이 사람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무시와 좌절을 겪었기에
그 모든 시간에 대한 온전한 보상을 받고 싶어 이러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성취 앞에서도 담담하다. 큰 자리에 올라서도 작은 호의에 감사 인사를 잊지 않고, 자신이 이 자리에 선 건, 결국 좋은 사람들과 운 덕분이라 말한다.
그 겸손은 체면이나 형식이 아니라, 자신의 여정을 솔직히 받아들이는 깊은 수용에서 비롯된 태도일 것이다. 마치 자신을 과하게 꾸미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 선택의 이면엔 말로 다하지 못한 욕망이 있고,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으며,
어디선가 조용히 이어져 온 회복의 시간이 깃들어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 모든 걸 알 수 없지만, 이러한 만남들은 어느 순간 거울이 되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어떤 종류의 성공을 꿈꾸고 있는가? 그 성공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성공을 재는 저울은, 사람마다 단위와 크기가 다르다.
누군가에겐 빛나는 숫자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조용한 평온이 더 무거울 수 있다.
같은 성공이라는 이름 아래 놓여 있어도, 그 기준은 각자의 삶의 방식과 지향에 따라 다르게 정의된다.
그렇게 각 사람마다 정의된 성공의 기운은 때로는 공동체를 단단히 묶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거리와 위계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성공을 얼마나 크게 쥐었느냐가 아니라, 그 성공을 어떻게 내려놓고, 어떻게 나눌 줄 아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방식으로 오르고, 또 내려놓는 일을 묵묵히 반복해 가는 삶의 여정 속에서 나는 무엇을 지켜왔으며, 무엇을 잃고 살아왔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 질문에 대한 대답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건 단지 성공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을 둘러싼 시간의 결, 마음의 깊이, 관계의 온도이다.
오늘 우리가 만난 사람들의 얼굴은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거울이 된다.
우리는 어떤 얼굴로, 어떤 마음으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정답은 없겠지만, 그 물음 하나쯤은 우리 가슴 어딘가에 오래 머물러도 좋겠다. 그 물음 속에서 우리의 말투가 달라지고, 표정이 빚어지며, 때로는 침묵마저도 또 다른 깨달음을 안겨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