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염상정 (處染常淨)
며칠 전 아침,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창밖에는 가을비가 고요히 내리고, 우산을 쓴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마저 정겨운 가을 아침...그때 문득, 카페 앞 작은 정원에 심어진 연꽃 몇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빗물에 젖어 있으면서도, 흙탕물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여전히 맑고 고운 꽃잎...그 순간, 오래전에 읽었던 글 속의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처염상정(處染常淨) - 더러운 곳에 처해 있어도 늘 본래의 깨끗함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만 흙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그 자리에서 더욱 빛나는 연꽃의 모습에 빗대어 쓰이는 표현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멋있는 사자성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세상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다 보니, 그 안에 담긴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세상은 늘 복잡하게 흘러간다. 불합리한 일이 합리적인 것처럼 포장되기도 하고, 상식이 비상식에 자리를 내주기도 한다. 요즘 사회를 바라보면 특히 그런 생각이 든다. 임기응변이 지혜로운 것처럼 여겨지고, 타협이 현명한 선택으로 둔갑한다. 원칙을 붙드는 사람이 오히려 고집스럽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도 많다.
살다 보면 누구나 편한 길을 택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남들이 다 그러니 괜찮다고, 애써 힘든 길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눈앞의 편안함 앞에서 주저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과연 어떤 선택이 나를 더 성장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고 묻곤했다. 그 질문은 어떤 경우에 나를 불편함 속으로 이끌었고, 시간이 지나 보니 그 불편이 오히려 나를 지켜준 힘이 되었다. 또 누군가에게는 신뢰로 이어지기도 했다. 물론 그때는 알지 못했다. 어떤 결정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지나야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 연꽃처럼 내 빛깔을 잃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고 믿는다.
삶은 언제나 진흙탕 같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쏟아지고,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살면서 흔들릴 수 있고, 때로는 물들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맑음을 되찾으려는 노력과 마음가짐이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힘이 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우리도 언젠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빛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빛이 크든 작든,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불빛이 될 것이다.
연꽃은 흙탕물 속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결코 흙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흙을 딛고 자라면서도 흙에 얽매이지 않는다. 깨끗하다는 것은 완벽하게 결백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맑음을 지킨다는 건 세상과 거리를 두고 혼자 고고히 서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안에 있으면서도 자기 색을 잃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어진 환경을 부정하기보다 그 안에서 흔들림 없이 나다운 길을 걸어갈 때, 비로소 삶의 품격이 드러나게 된다. 세상과 부딪히면서도 자기 기준을 잃지 않는 것, 유혹에 흔들리더라도 끝내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처염상정이 전하려는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