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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설악의 추억

기억을 찾아 떠난 여행

by 캐나다 마징가

요즘은 새벽 네 시만 되면 눈이 저절로 떠진다. 아직 잠결에, 문득 지난여름 한국 여행 중 다시 찾았던 내설악의 풍경들이 떠오른다. 아이들과 함께여서 즐거웠지만, 젊은 날의 추억이 깊이 새겨진 장소이기에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계곡 위로 피어오르던 물안개, 숲을 스치던 바람소리, 산 아래 허름한 식당에서 도토리묵에 술잔을 기울였던 사랑의 기억들과 감정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산 아래 풍경들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새로 들어선 식당 단지와 한결 말쑥해진 시설이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너무나 고맙게도 내 기억 속의 오래된 숙소와 식당, 기념품 가게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월을 견딘 주인들은 오랜 벗을 만난 듯 반가웠고, 세상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들이 지내온 세월의 풍파를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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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산행은 단출했다. 이 곳 상점들에서 팔던 설악산 등산로가 그려진 작은 손수건 하나면 충분했다. 그것을 목에 감으면 산을 오를 준비가 끝났고, 땀을 닦거나 계곡물에 적셔 목의 열기를 식히는 데에도 쓸 수 있었다. 지금은 좋은 산행장비들이 많지만, 그 소박한 손수건 속에 담긴 설렘은 여전히 선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행 후에 즐기는 도토리묵과 막걸리 한잔의 소박한 상은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기엔 충분했다. 번듯하지 않아서 더 마음 깊이 남았고, 그 자리가 내게 가르쳐 준 건 행복은 언제나 마음의 풍요에서 온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오래 남는 것은 결국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름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함께 걷고 웃던 이의 얼굴과 목소리가 과거의 기억과 풍경 속에 겹쳐 살아난다. 과거의 추억을 기억한다는 건, 대부분 그들과 나눈 시간을 다시 회상하는 일이다. 그래서 예전 어느 시절의 풍경이 그리운 만큼, 그 순간의 사람들도 그립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손수건은 사라졌고, 술잔은 비워졌으며, 사람들은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하지만 추억 속의 공기와 그날의 온기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은 바뀌지 않았다. 새벽 네 시, 불현듯 떠오르는 내설악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나를 다시 추억과 사람 속으로 데려가준 고마운 길었다. 아득히 멀어진 듯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선명히 살아 있는 기억으로....

Screenshot 2025-09-05 at 4.09.49 PM.png 추억의 손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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