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머무는 또 하나의 집
아들이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만 같은데, 어느새 3학년 1학기, 가을을 맞이했다.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흐른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만큼 아들의 발걸음도 한층 단단해지고, 대학에서의 삶도 깊어져 간다. 부모의 마음으로는 아직 어린아이 같지만, 그는 이제 청춘의 한가운데에서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의 교정을 거닐다 보면, 고풍스러운 강의동이나 도서관만큼이나 시선을 끄는 건물들이 있다. 마치 오래된 저택처럼 보이는 붉은 벽돌의 건물들과 아이비 덩굴이 멋스럽게 자란 건물들, 바로 프린스턴만의 독특한 전통인 이팅 클럽(Eating Club)이다. 처음 이곳을 찾는 이들은 그저 식당쯤으로 여기기 쉽지만, 사실 이 클럽들은 단순한 식사의 공간을 넘어, 학생들의 청춘과 교류, 그리고 전통이 살아 숨 쉬는 프린스턴만의 상징이다.
그 시작은 18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숙사 식사가 단조롭던 시절, 학생 몇몇이 함께 모여 좀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첫 이팅 클럽인 아이비 클럽(Ivy Club)이 문을 열었고, 이 전통이 점차 확산되면서, 한때는 스무 개가 넘는 클럽들이 운영되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문을 닫거나 통합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열한 개의 클럽이 남아 각자의 방식으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학부 3,4학년 학생들 중심의 이팅 클럽은 보통 2학년이 끝날 즈음 학생들이 선택하게 된다. 대부분의 클럽은 비커(Bicker)라고 불리는 선발 과정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다. 이는 일종의 면접이자 교류의 장으로,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의식이다. 반대로 사인-인(Sign-in) 방식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클럽도 있다. 방식은 다르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모두 같은 경험을 나누게 된다. 함께 식사를 하고, 토론을 벌이고, 음악과 예술을 즐기며, 때로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파티 속에서 우정을 쌓는다.
열한 개의 클럽은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다. 전통과 학문적 교류를 중시하는 아이비, 타워, 캡 앤 가운은 여전히 보수적이면서도 명예로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타이거 인, 캐넌, 카티지는 활발하고 사교적인 기운으로 가득 차, 스포츠와 파티 문화가 어울린다. 한편 테라스, 클로이스터, 챠터 같은 클럽은 자유롭고 예술적인 기운이 흐른다. 이곳에서는 음악 공연이 열리기도 하고,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학생들이 모여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마지막으로 쿼드랭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포용의 상징으로, 가장 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처럼 이팅 클럽은 단순히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누는 대화와 웃음, 함께하는 시간은 학생들에게 또 다른 교실이 된다. 실제로 많은 졸업생들이 수십 년이 지나도 자신이 속했던 클럽을 ‘두 번째 집’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그곳에서 맺어진 인연과 추억은 학문적 성취 못지않게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팅 클럽은 그 엘리트성과 경쟁 때문에 종종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일부 클럽은 가입 과정이 치열하고 배타적인 문화를 형성하여 사회적 위계를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팅 클럽은 프린스턴만의 독특한 문화적 상징으로, 대학 경험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과정으로 자리잡았다.
프린스턴의 가을은 고딕 건물 위로 단풍이 내려앉아,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 자리한 이팅 클럽들은 지금도 새로운 청춘들을 맞이하며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프린스턴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그것은 단지 오랜 역사와 전통만이 아니라, 오늘도 이 클럽 안에서 이어지고 있는 청춘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