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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May 21. 2024

힘든 날

견디기

힘든 날이었다. 죄송하다는 말 외에 있는 말이 없었다. 업무 순서를 헷갈리다니. 적응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이었다. 나 역시 사람이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고 남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을 가장 싫어하고,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에 경멸하던 나였는데, 그 경멸의 대상이 곧 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는 항상 늦게 찾아온다.


숙인 고개 뒤로 험담하거나 헐뜯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표하는 동료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아무 말도 못 하는 나를 도와주고 보듬어 주는 선배있었다.


'나 꽤 잘 살아왔구나'. 기뻤다. 그리고 죄송함의 눈물이 흘렀다.




쫓기는 상황에서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지금은 좀처럼 실수하지 않지만, 입사 첫 해에는 이런 사고뭉치도 없었다. 아찔한 경험이 몇 번 있다.


명절 전 새벽에 장비를 부러트려 아침 일찍 내려가야 하는 선배들의 등만 본 적도 있었고, 기분 좋게 시작해야 할 12월 31일 오후 10시에 부품을 파손해서 새벽 3시에 퇴근해야 하기도 했었다.


그때 선배들은 오히려 타박하기보다는 묵묵히 뒤처리를 해주었다. 그게 오히려 죄송스러움을 더했다. 잘못에 아무런 책임지지 않는 기분, 차라리 감정 쓰레기통 역할이라도 하고 싶었을 정도로 부끄럽고 창피했다.


아무 생각 없이 해보고 싶다는 의욕만이 가득했다. 장비에 손대지 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모자람이 많았지만 채워지고 나니 한 사람의 몫을 하게 되었다. 신기한 일이었고 이 경험 덕분에 후배들을 묵묵히 지켜보게 되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래도 이런 시간은 지나고 새로운 사건사고로 파묻힌다는 건 불변의 진리이기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솔로몬의 반지 문구를 마음속에 새겨본다.


이 또한 지나간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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