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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Feb 09. 2024

마음 추스르기

겉과 속이 많이 달라요

많이 썩었다. 포장된 겉은 차분하다. 집에 돌아온 후 먹는 야식과 비어 가는 냉장고를 보며 무엇을 채울지 고민한다. 후회하고 머뭇거리다 기차가 떠났음을 알고 다음 표를 예매한다. 다행히 아직 나를 위한 기차가 있음에 안도하며 살아간다.


성취에 목마르고 꼼수를 갈망한다. 실낱같은 희망을 잡으며 살아간다. 어떻게든 차분함을 표방하지만 혼자일 때는 어쩔 수 없다. 내가 나를 잡아낸다. 대담해지기도 쉽게 지치고 약해지기도 한다. 나도 나를 잘 모르지만 제일 잘 알기도 하다.




아주 아주 힘들 때는 포장을 벗겨내고 썩은 속을 솎아낸다. 약간의 살점도 딸려나가지만 어쩔 수 없다. 줄 건 줘야 한다. 그러고서 한참을 보낸다. 영원같이 느껴지는 찰나를 혼자서 보낸 후에는 조금 나아진다. 또 눈보라가 찾아오기 전에 길을 나서야 한다. 아직 많이 춥지만 어쩔 수 없다.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조금씩 내디뎌본다.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다. 다만 공허해진 마음 사이로 칼날 같은 말들이 통과한다. 그러다 실체를 마주한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자신임을.


작아진 자신을 예전에는 내동댕이쳤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던 어린 날을 지나 지금은 쓰다듬고 안아준 뒤에 떠난다. 그때의 나에게는 어쩔 수 없었음이 있다. 핑계라는 것을 알지만 지나가버린 것은 역시 어쩔 수 없다.


아껴준 나 자신은 곧이어 나의 살점이 되고 연약한 피부가 된다. 더는 춥지 않아 겉 옷을 벗더라도 단단해진 피부가 갑옷같이 든든하다. 전보다 힘들 수 있겠지만 견뎌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매무새를 다듬고 다음을 기약한다. 겉은 차분하고 속은 자주 썩는다. 어떠한 타인도 도와줄 수 없지만, 나는 또 해낼 것이다. 죽지 않는다면 내일도 눈을 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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