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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Mar 13. 2024

이미 늦었다면 천천히 가라

스토아 지각

지각을 했다.




거의 5년, 6년 만에 아침에 꺼림칙한 느낌으로 일어났다.

야, 이렇게 잘 잤다고? 오늘 정말 행복한 하루가 되겠는걸.

시계를 보니 9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큰일 났다.


'무슨 일이야, 이게'라는 생각과, '생각보다 잘 잤는데?'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부장님께 연락드린 후 호흡을 가다듬었다.


'일단 1차는 오케이, 2차는 출근이다. 시간을 적당히 안배해서 잘 출근하자' 하며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윗도를 머리에 구겨 넣다 생각했다.'조금 천천히 가볼까?'

평상시에 나는 자전거로 15분 정도 걸리는 길을 7분 만에 달린다. 그 길을 조금 천천히 가보기로 했다. 오히려 서두르다 차에 치일 수 있기안정을 갖고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마침 튀어나오던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평상시라면 묘기처럼 피했지만 오늘은 스무스하게 비켜섰다. 예상보다 나쁜 느낌이 없었다.




어차피 지각은 했고, 늦은 김에 천천히 가보자라는 생각은 삶의 슬럼프가 올 즈음인 지금 가장 좋은 생각이었다.


어차피 늦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하는 것보다 이 상황 속에서 어떤 것을 할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질지를 생각했다.


이것만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꾀죄죄한 모습보다, 단정하지만 최대한의 죄송함을 표현하되 마음속은 평화로울 것.


그리고 내일이면 이 모든 순간이 다 잊힐 거라는 걸 생각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는 감격스러웠던 날도 그랬음을 상기한다.


오늘도 멋진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저 지각을 했다고 서두르고 덤벙대며 시작하기에 오늘은 정말 멋진 하루이다.


날씨도 좋고 내 마음도 좋고 퇴근도 일찍 할 수 있겠지.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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