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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May 21. 2024

해방

기술사 시험이 끝났다. 400분 동안 어깻죽지와 전완근이 육체와 분리되고 싶어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 8시에 구로와 오후 5시의 구로를 같은 날에 마주하니 퇴근하는 기분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밀려둔 약속들을 하나 둘 잡았다. 조만간 바이올린 연주회도 준비해야 했고 밀린 운동들도 해야 했다. 오래간만에 인바디를 재니 아주 적절하게 지방만 늘었다. 이런 건 참 기가막히단 말이지.


시험 이후로 미뤄뒀던 친구들과 식사와 맥주 한 잔을 기울였다. 자기 계발을 좋아하는 친구들과의 흔치 않은 모임이라 좋았다. 더 어렸을 때 만났다면 밤새도록 떠들고 싶었다.


정지 버튼이었던 운동도 시작했다. 역시 몸이 많이 굳고 무겁다. 조심스레 뛰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차오르는 숨에 버거워 걸었다. 몸은 버텨도 장기가 못 버티는 느낌이 들면 멈춘다. 나약함과 나를 약하다고 여기는 건 다르다. 다시 초심자의 마음으로 신발끈을 맸다.


송진이 말라가는 바이올린을 다시 들었다. 스케줄이 빡빡한데, 시험 끝나고 바로 다음 주에 연주회다. 악기 협주는 실력별로 그룹을 나눈다. 가장 기초적인 라인이지만 뼈대 역할이기에 팀에 누를 끼치지 않게 연습해야지.




영원할 것 같았던 시험 기간이 끝나고 다시 새로운 것들을 준비한다. 몰아붙이는 느낌보다는, 그저 즐겁다. 바쁜 삶에 적응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 더 힘들다. 이미 달리기 시작한 이상 멈추는 게 어려울 때가 있듯이.


'이방인'을 쓴 카뮈가 말했다. 인간은 짧은 평화를 사랑하고 기나긴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고. 이 짧은 평화를 온전히 즐겨야겠다. 모든 문항이 서술형이니, 원하는 만큼 점수가 나올지 모른다는 모두가 알만한 핑계를 댄 채 몸을 눕힌다. 고생한 나를 위해 박수, 기다려온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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