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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Jun 09. 2024

뚱뚱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오늘 10km를 뛰고 왔다. 기록은 52분대, 5km 즈음에서 26분대가 나왔으니 쉬지 않고 뛴 셈이다. 5km 지점부터 발가락이 저려오고 발바닥 가죽이 벗겨졌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종착지에 가까워질수록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러너스 하이를 느낀 나는 한참을 배시시 모자란 듯 웃고 있었다. 문득 어렸을 적 내가 떠올랐다.


현재 골격근 42kg, 체지방률은 15%대로 상위 2% 수준의 인바디 점수가 나온다. 하지만 지금의 건강몸을 가진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진학하고 컴퓨터 게임을 시작하며 야외 활동이 급격히 줄었다. 태권도 학원을 다녔지만 잦은 외식과 절제되지 않는 식습관으로 두터운 지방층이 온몸에 쌓여갔다.


덜 먹고 더 움직이면 당연히 빠지겠지만 친척들은 나중에 다 빠지게 되어있다는 말만 늘어놓았고 간혹 뵙는 어르신들은 '저놈 자식 살 좀 빼게 해라'라는 말로 마음속에 흉터를 새겼다.


특히 친할아버지 앞에서는 어머니께서 '태권도 열심히 다니고 있고 몇 kg 빠졌대요'라는 거짓말로 무마하셨다. 사실 고등학교 3학년까지 살이 빠진 적은 없었다. 나도 오죽 내가 싫었으면 중학교 졸업사진을 파내버렸을까.


고등학교 3학년 때, 회사를 상반기에 붙었고 하반기에는 시간이 남아 먼저 엄청나게 살을 빼 다른 사람이 된 친구에게 운동을 배웠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용감했고 1개월 반 만에 30kg 가까이 감량에 성공했다.




내가 살던 경기도 안산의 본오동에서 와동까지는 자전거로 왕복 2시간이 걸렸다. 체육관에 도착해서 2시간의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매일 4시간씩 운동을 한 셈이다.


식단은 아무것도 몰랐기에 무식하게 덜 먹었다. 밥은 반공기, 배가 부른 느낌이 들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지금도 식단 조절이 가장 어려운데, 나 자신이 존경스럽게 느껴지는 시절이었다.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면 1kg씩 빠져있었고 바지와 셔츠를 전부 다시 샀다. 한쪽 바지 다리 구멍에 양쪽 다리가 들어갔고 학교에 돌아가니 모두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즐거웠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처음 운동을 다녀오고 온몸에 알이 배겨 바닥에 누운 채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던 때이다.


전화를 받은 친구는 마치 네가 실패할 줄 알았다는 말투의 '알았어' 한 마디였고 몹시 분했다. 무시당하기 싫다는 자존심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 모습이 기특해 보이셨을까. 주변에 도와주는 분들도 많았다. 헬스장의 우락부락한 몸을 가진 형님들도 휘적대는 우리들에게 동작을 교정해 주셨었고 체육관장님도 열심히 해보라는 칭찬을 해주셨다. 지금도 어딜 가던 배우는 것에 겸손과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해 주었던 때이다.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된 내가 삶을 돌아보며 느끼고,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네가 지금 이 부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네 자유지만, 네가 원하는 부서에서 정년을 맞이하지 못하는 건 네 잘못이야'라고.


우리의 삶은 몹시 길다. 부모의 영향을 받는 10대가 지나면 성인이 되고 본인 행동의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된다. 그때부턴 모든 게 셀프다. 배움도 셀프, 게으름도 셀프. 어떤 삶을 살지도 셀프.


환경과 부족함을 탓할 수 있겠지만, 배우려고 한다면 근처에 도서관이 없는 곳이 없고 운동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곳도 없다. 극악의 상황에서는 가뭄에 콩이 나면 신기하겠지만, 당연히 나야 할 곳에선 더 좋은 품질의 작물이 자라야 한다.


머리 숙이고 배우려고 한다면 훌륭한 멘토는 아니더라도 본인이 아는 범위까지 알려주는 사람이 많다. 정치질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게 싫겠지만 자신을 낮추는 사람에게 대놓고 칼을 휘두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언젠가 과거로 간다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그렇다. 부모님이 알려주지 못한 건 내가 채워야 한다고, 그러니 지금 열심히 걸으면 나중에 뛰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그 말을 듣는 나는 더 멋진 삶을 살아갈까, 아니면 또 어디서 이상한 꼰대가 나타나 헛소리를 하는 걸로 치부할까. 흥미로운 잡생각이다. 이만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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