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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Aug 06. 2024

살아남은 자들

그렇다면, 나는

어렸을 때, 교과서에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미래의 후손들로부터 물질과 땅들을 빌려 쓰는 것이라고, 적혀있었다. 최근에야 이 말이 와닿는다.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환경과 물질들은 살아남은 자들의 것이다. 나 또한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범주에 들어가기에 누리고 있듯이.


어딘가 조금씩 아파오고 쉬어야 할 때에, 괜스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게 느껴지는 건 이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업무 중 좀이 쑤실 때 담소 나눌 동료를 찾아 메신저를 뒤진다. 카톡 친구들을 살피듯이 어느 부서에 있는지, 사진은 그대로인지를 바라보며 추억에 잠긴다.


그중 옛 선배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자리에서 수십 년을 지키는 저들은 어떤 삶을 사는 것일까. 그 시간을 못 견뎌 옮겨가는 이들의 눈과 그들의 눈은 같은 높이를 바라볼까.


만족하며 살고 있는 이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지금도 충분한데, 굳이 앞으로 나아가는 리스크를 짊어질 필요가 있을까, 물론, 이 생각이 리스크가 되는 경우도 많지만.


자리를 옮기며 성장을 갈구하는 이들의 눈은 열정으로 반짝인다. 자신의 성취욕구를 불쏘시개 삼아 계속해서 나아가는 이들의 발걸음은 유령처럼 가볍다.




이를 옆에서 바라보면 높낮이를 가려낼 수 있겠지. 운동, 공부, 업무, 그 어떤 것도 끝내 멈추게 된다. 각자의 열정이라는 장작이 소진되거나, 시간이 다한 시점에.


삶의 어느 지점에선 결정도 필요하다. 그 열정을 온전히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자신을 갈고닦을지 가정을 이루고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여 안정적인 울타리를 가꿀지.


날이 선 칼처럼 자신을 다듬는 것도 좋지만, 나는 안정을 찾고 싶다. 불안정 속에 사는 사람들은 알 수 있다. 흉내 낼 수 없는 안정감을 풍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열심히 달린 뒤 마시는 물과 따뜻한 음식처럼, 그것들은 내 안을 채워 새로운 원동력으로 나를 살아가게 할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달려 나가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


10대, 20대 초중반부터 빛나는 연예인들도 있지만, 30대, 40대에 그간 쌓은 덕을 나누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그렇게 살아남고 싶다.


약함과 강함을 따지기보다,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존재로 살아감을 결정하는 사람.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허우적 대기보다 작은 유리병을 소중히 채워내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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