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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Sep 14. 2024

비가 싫어진 건,

추적추적 내리다, 창문에 부딪혀 귓가를 맴도는. 차분하게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책 읽기 좋게 시원한 비가, 이젠 싫어졌어.




모든 날씨를 좋아했어. 맑으면 쾌청해서 기분 좋고, 비가 와 궂은날에는 지나고 구름 사이로 비추는 밝은 빛이 좋았어.


하지만 넌, 비가 오는 날을 싫어했지. 축축 쳐지고, 기가 빨린다는 말을 듣고 버스 뒤편에 앉아 지쳐 보이는 네 눈꼬리가 마음에 걸렸어.


재밌을만한 이야기에도, 반응이 없던 네가 걱정되더라고. 물론 정말 재미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가던 걸음이 물에 적신 솜뭉치처럼 무겁더라.




그 이후로, 비가 오는 날이 싫어졌어. 가급적 맑은 날에 보고, 비가 오면 푹 쉬게 두기. 게다가, 지친 모습을 보는 나도 덩달아 힘이 들더라고.


출근길에 비가 내리면, 지금 다 내려서 네가 출근할 때는 다 그치기를 바랐고, 같이 가는 길에 비가 내리면 괜히 하늘이 원망스럽더라.


이젠 비가 싫어졌어. 돌려 생각해 보면, 네가 내 안에 채워 진만큼 비워진 건 아닐까. 앞으로도 무언가 싫어지는 날이 오겠지. 잊히는 날도 올 거야.


하지만 채워지기에 비워진다 생각하면 오히려 더 따뜻해지는 날들이야. 그나저나, 또 비가 오네. 내 우산이 망가지더라도, 네가 나설 때는 맑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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