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일
미국에 온 지 61일째 되는 날 _ (아직은 여행자)
슈퍼마켓 경리자리 면접은 오늘 아침 아홉 시였지만 나는 플러싱 Flushing에서 다섯 시 반에 출발하여 두 시간을 대중교통을 타고 여덟 시 전에 슈퍼마켓 앞에 도착했다. 택시로 가면 이십오 분이 걸리고 23불이 드는 거리지만 MTA 버스로 가면 두 시간이 걸리고 2.75불이 드는지라 나는 버스를 택했다. 두 시간을 덜 자도 괜찮을 체력은 남아 있지만, 택시를 타면 절약될 한 시간 사십 오분 안에 20.25불을 벌 여건은 안 되기 때문에 버스는 아직 남는 장사였다.
네일 가게에서 잘리고 어제 하루를 쉬고 오늘부터 취업준비에 다시 뛰어든 자신이 약간은 대견스러워 이런 사람을 안 뽑으면 누굴 뽑냐고 스스로 사기를 돋우면서 면접시간에 딱 맞추어 들어갔다.
경리 자리를 뽑는다길래 인사팀이며 총무팀이며 구매부서며 홍보팀 그 밖에 다른 부서들도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전혀 반대로 직원은 달랑 나 하나, 관리해야 할 슈퍼마켓은 총 아홉 개. 면접을 보는 사람은 사장님 한 분.
아... 앞으로 펼쳐질 날들이 데자뷔처럼 눈앞을 쭈욱 스쳐 지나갔다. 사무에 관련된 모든 일들을 혼자서 다 하게 되겠구나! 하지만 지금은 "시켜만 주십시오!"의 각오로 온 자리라 "이 일은 부당한데요, 이 정도 돈은 턱도 없는데요"라고 말대꾸를 하거나 나의 가치와 정당성을 논할 처지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근무시간은 하루에 열두 시간, 마트이다 보니 일 년 내내 공휴일이나 휴가는 없고 그저 매일 출근해서 일하면 매주 월요일마다 1000불을 현금으로 지급해 준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내 의지를 박약하게만 할 뿐 현실적인 질문이 아니다. 나는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영어이름이 무엇이냐, 무엇을 하다 온 사람이냐, 뉴욕에 연고가 있냐, 영어로 일하는데 문제없냐, 출퇴근 거리가 얼마나 되냐... 등 압박면접도 토론면접도 아닌 말 그대로 서로 대면하여 만나 보는 것으로 입사가 확정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오늘부터 일 할 수 없겠냐고 마지막에 물었더니 사장님은 그냥 내일부터 나오라고, 열두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닐 거라면서 오늘은 들어가서 쉬라고 했다. (오늘부터 할 수 있는데... 아쉽네)라고 생각하며 다시 두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는 왜 스물네 시간밖에 되지 않는가. 열두 시간 일을 하고 네 시간 통근을 하면 남는 여덟 시간 안에 먹고 자고 씻고를 해야 하는데 하루가 스물일곱 시간 정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다소 바보 같은 생각이 든 자신이 안쓰러웠고 곧 바로 일자리를 구한 자신이 자랑스러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