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일
미국에 온 지 이틀째 되는 날 _ (아직은 불체 전)
시차적응에 보통 1~2주는 걸리는데 현 상황에서 "적응"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치였다. 들고 온 돈이 없기에 적응을 기다리다가는 굶어 죽게 생겼다. 내 삶에 잠보다는 배고픔을 달래는 것이 항상 우선이었기에 나는 무조건 일을 해서 걱정 없이 먹고 싶었다.
약속대로 아침 아홉 시 아파트 1층에서 네일가게 직원들의 출퇴근을 담당하는 봉고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라. 출근시간만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생각해 보니 어제 어느 지역으로 출근하는지 자세히 묻지도 않고 그저 첫날부터 일자리가 생겼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무 생각 없이 차에 올라탔던 것이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찾아보니 오늘 나간 네일가게 주소는 코네티컷주(Connecticut)에 있었다. 하기야 뉴욕 주면 어떻고 뉴저지 주면 어떻고 코네티컷 주면 또 어떠하리! 어차피 내가 운전하는 것도 아니고 내려주면 가서 일만 잘하면 되는 것을.
출근 첫날, 서비스직을 난생처음 해보는 나로서는 요령이 전혀 없어 힘만 쓰면 다 되는 줄 알고 손님들 마사지에 땀을 뻘뻘 흘리며 열을 올렸다. 네일은 아직 손 기술이 없기에 사장님이 손님들을 상대하지 못하게 했고 다른 기술자분들이 발톱을 칠하는 동안 나는 어깨며 등이며 주무르면 된다고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팁문화에도 아직 적응이 안 된 상태라 마사지가 끝나고 손님들이 돈을 쥐어주는 것이 그렇게 송구스러울 수가 없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아직 체면이라는 것이 남아 있어서일까. 돈을 벌겠다고 밤잠 다 설치고 나왔는데 처음 받아보는 팁에 왜 그렇게 손이 덜덜 떨렸을까. 마치 못 받을 뒷돈을 받은 것처럼. (그래봐야 사 달러!)
너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미국에서는 팁을 받을 때 부끄러워하면서 사양하는 문화는 없다고, 주면 냉큼 "Thank you! " 하면서 세어보지 말고 주머니에 집에 넣으라고 첫 손님이 나간 이후에 네일가게 창고에서 "사상교육"을 받았다. 그래. 강아지도 안 물어갈 이깟 체면 버리면 그만인 것을!
오늘 출근 첫날, 손님 일곱 명의 어깨를 주무르고 36불의 팁을 받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 아홉 시가 넘었다. 서툴지만 하루종일 손님들의 등 뒤에서 힘을 쓰던 내 모습이 가상했는지 내일은 잘하면 손님 발톱정리는 할 수 있게 기회를 준다고 차에서 내릴 때 사장님이 귀띔해 주었다.
손톱은 조금만 실수를 해도 눈에 잘 띄지만 발톱은 하루종일 허리를 숙여 자기 발톱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기에 기술이 없는 초보자에게도 기회가 주어지나 보다 생각했다. 쪼그리고 앉아 남의 발톱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감지덕지한 일인 줄, 뭐가 그리 잘나서 여태까지는 그 사실도 모르고 살았을까.
인간에게 손톱 발톱이 달려 있어 나 같은 처지도 먹고 살 기회가 주어졌다는 현실에 감사하며 얼마 안 되는 36 달러를 반복해서 세어보고 또 세어 보고 잘 준비를 했다. 아직 졸음이 쏟아지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내 뇌는 내가 어디에 와있는지 무슨 일을 시작했는지 아직 앞뒤 분간이 안 가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고마운 이틀째 되는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