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1월 25일
미국에 온 지 543일째 되는 날 _ (불체 중)
친구사이로 두 달이 넘도록 암벽만 같이 타다가 새해로 넘어가는 2020년 12월 31일 자정에 우리 사이도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던 사이에서 낯간지러운 애칭을 부르는 사이로, 밥을 먹으러 가면 각자 다른 메뉴를 시켜 놓고 자기 앞의 음식만 먹던 사이로부터 먹어도 되는지 구태여 물어보지 않고 서로의 포크가 왔다 갔다 하는 사이로, 운동을 하다가 상처가 나면 각자 반창고를 꺼내어 스스로 붙이던 데로부터 서로의 손을 호~ 하고 불어주며 상처소독을 해주는 사이로, 상대의 작은 상처에 본인이 더 아파하는 사이로, 각자 거리를 유지하면서 길을 걷던 데로부터 두 손 마주 잡고 꼭 붙어서 길을 걷는 사이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중에서도 친구사이일 때와 연인사이가 되었을 때의 가장 큰 차이점을 꼽으라면, 친구사이일 때는 주말마다 만나도 아무 느낌 없던 사람이 연인사이가 되고 나서부터는 매일 매 순간 보고 싶어 진다는 점이었다. 작년 11월 "같이 살면 되지"라고 롱아일랜드 시티의 아파트들을 바라보며 했던 그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아 사귀고 나서 내가 먼저 "그 말 기억나?" 라며 그의 동거의사를 물어봤다.
그는 "당연히 기억하지. 말하고 나서 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너무도 당황스러워 그저 네가 잘 넘겨주기를 바랐는데 다행히 웃어 넘겨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라고 대답했다. 그 역시 그날을 나만큼이나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그럼 지금도 당황스러워?" 내가 다시 물었다.
"아니. 너와 있으면 나의 가장 진솔한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서 같이 살아도 불편함이 전혀 없을 것 같아. 그리고 같이 산다면 네가 살아보고 싶다고 했던 롱아일랜드 시티에서 살고 싶어."
우리는 그 짧은 대화들이 오고 간 뒤 지금 살고 있는 월세기간이 만기 된 것도 아닌데 마치 각자의 집주인들이 자기들을 쫓아내기라도 하는 듯이 속전속결로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나야 어차피 아무도 안 살았던 다락방에서 빠져나오면 그만이지만 남자친구는 계약기간 전에 집을 옮기는 것이었기에 전 집주인에게 한 달 치 위약금까지 지불하며 이사를 강행했다. 우리는 무엇이 그리도 급했던 것일까.
코로나 팬데믹으로 탈 뉴욕 현상이 이 동네 저 동네에서 생기는 바람에 이곳 롱아일랜드 시티 월세도 생각보다 저렴했다. 신축 건물들은 우후죽순처럼 지어 놨는데 입주자들은 하나 둘 빠져나가기 시작하니 건물주들이 앞다투어 할인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찾아본 이 건물은 무려 사 개월치 무료 입주라는 말도 안 되는 할인 행사를 진행 중에 있었다. 고로 일반시에는 (1년 계약 기준) 한 달에 약 2800불인 스튜디오(원룸)가, 행사 중인 지금은 1938불에 거주 가능한 것이다. 역시 지레 겁부터 먹지 않는 것을 앞으로 삶의 신조로 삼아야겠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각자 두 시간 넘게 떨어진 다른 집에서 살던 사이에서 오늘 부로 한 공간에서 사는 사이로 바뀌었다.
돈만을 생각했다면 무료 다락방에 쭉 거주하는 것이 더없이 똑 부러진 경제적인 선택일 수 있었으나, 이 땅에 단순히 돈만을 벌겠다고 온 것이 아니지 않던가. 나는 달에 천불이 넘어가는 대가를 지불하고 다락방 생쥐와의 동거보다는 남자친구와의 동거를 선택했다.
주어온 매트리스 하나뿐인 월세입자의 전대입자(sublease)로부터 사람이 살지 않는 먼지 쌓인 다락방의 무료 거주자로, 이제는 벽 두면이 전부 유리로 되어있는 내가 꿈꾸던 동네의 입주자로. 2019년에서 달력이 2021년으로 넘어가자 나에게는 수많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지구 반대편까지 온 보람이 느껴졌다.
정말로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허황한 주문이 아니고 일리가 있는 말씀이었던 것일까. 내가 거주하며 살아온 모든 공간들을 깨끗이 치우고 가꾸고 애정하다 보니 이 서류 미비자에게도 점점 더 좋은 공간으로 옮겨가는 행운이 자꾸만 기적처럼 찾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