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이산>이란 메가히트작이 방영하던 그 때, 저는 다른 드라마에 빠져 있었어요. 고공행진하는 다른 경쟁작들에 묻혀 지금은 이름을 말해도 그런 드라마가 있었냐는 이야기를 듣는 비운의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
어쩌면 일종의 홍대병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안 보는 드라마를 그렇게나 챙겨봤던 건 말이죠. 사실 드라마가 너무 만화 같기도 하고, 좀 신기한 작법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 드라마가 제 마음을 끌었던 건 드라마 속에서 묻어나던 이상한 따뜻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따뜻함이 극대화 되었던 마지막 엔딩이 굉장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조수미 씨가 부른 <챔피언>이라는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드라마 속에서 스쳐갔던 수많은 이름없는 조연들을 한명씩 한명씩 조명합니다. 스틸컷에 이름과 나이까지 적어가면서... 그리고 제 기억에 깊이 각인된 마지막 문구가 자막으로 나옵니다.
그들을 억지로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 삶의 주인공이라서
이 이야기에 참견하기에는 너무 바쁠 뿐입니다.
당시에 머리를 띵!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 소중한 시간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풀어도 될 귀한 러닝타임을 이야기의 조연들을 위해 할애한 애정. 그때 일종의 다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기 삶의 주인공인 세상의 조연들의 이야기를 찾아보자.
제작사를 나와서 작은 1인 영상 사업체를 운영한지 벌써 4년이 넘었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이야기를 조합해 한 주제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살았습니다. 보배로운 이야기들을 슴슴한 다큐멘터리라는 그릇에 담아, 사람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보배를 담는 질그릇'이라는 가치를 붙들고 계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사실, 예전엔 이 모든 과정이 만들어진 작품을 보는 시청자들을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 나온 사람들이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과 결과물을 통해 또 힘을 받아 계속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스스로의 가치를 깨달아갔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이 이야기는 어쩌면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저를 위한 것이란 걸 요즘 들어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에 어떤 장로님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털어 작은 미자립교회들을 돕고, 자신의 시간을 털어 교회들의 건축을 돕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고 기꺼이 자기 삶을 내어놓았던 한 '어른'의 이야기였습니다. 함께 일하는 선배가 끝까지 붙들고 제작했고, 그 이야기의 결과물을 봤습니다.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 자쳉의 울림도 컸지만, 저에게 정말 큰 울림이었습니다.
무명한 자의 이야기를 담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나의 소명이구나
지금도 다양한 경로로,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잠깐의 울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 잠깐의 울림으로 누군가는 오늘을, 누군가는 이번 주를, 누군가는 올 한해를 살아갈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보배로운 당신의 이야기를 담을 질그릇을 들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