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 서여기인(書如其人)

부여군 '신동엽손글씨체' 다큐멘터리

by 보통PD 빅대디

함께 일하는 선배의 지인 중에 캘리그래피도 하시고 서체 디자이너를 하는 분이 있습니다. 길을 막 걸어가다가 간판을 보고 '저거는 몇 년에 나온 무슨 체인데 그러니 저 간판은 몇 년이 안 된 거겠네요.'라고 말할 수 있는 분. 말 그대로 글자 덕후인 분이죠. 그렇게 글자를 사랑하는 분이시라 글자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죠. 이 분이 부여군에서 상권 활성화를 위한 브랜드 도구로서 서체를 만들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체의 제작과정과 지역 주민들과 나누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아서 디자인 어워즈에 내고자 한다는 제안을 해 주셨어요. 오늘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던 '신동엽' 프로젝트 이야기입니다.


신동엽? 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우리에게 신동엽은 놀라운 토요일에 나오는 동물농장 아저씨가 먼저 떠오르니까요. 하지만 또 한 명의 우리 기억 속에 있는 신동엽이 있답니다.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中


학창 시절 배웠던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신동엽 씨가 바로 그입니다. 신동엽 시인의 생가가 바로 부여에 있었더라고요. 부여는 사실 저희 아버지의 고향이라 어려서부터 자주 갔었는데 신동엽 시인이 부여에 터를 두고 있는 문인인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며 그냥 어렴풋이 이름만 알던 시인의 이야기를 이 프로젝트 덕에 조금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날이 조금씩 더워져가던 무렵, 부여 사업팀과 함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신동엽 시인의 아들이신 신좌섭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미팅을 하고 며칠 뒤 혼자 계신 연구실에 다시 들러 인터뷰도 진행하고 아버지와 관련된 기억이 남겨 있는 물건들을 보며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아주 오래된 한 노트였습니다.


교수님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신동엽 시인의 아버지가 쓴 아들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는 노트였습니다. 굉장히 정갈하고 예쁜 글씨체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간 노트 속 이야기에는 아들을 향한 고마움과 미안함, 자랑스러움이 빼곡히 담겨 있었습니다. 형편이 충분치 않았던 가정환경 속에서 일본에 유학을 갔던 이야기, 처음으로 시집 <금강>을 내고 시인으로서 삶을 시작할 때 아빠로서 건넸던 응원의 마음과 두근거림, 그리고 무엇보다도 젊은 나이에 먼저 세상을 떠나간 아들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이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다큐 제작 후 이듬해 하늘의 별이 되신 故 신좌섭 교수님과 인터뷰 당시

교수님은 자신의 아버지인 신동엽 시인을 공동체를 꿈꾸던 ‘사상가’였다고 표현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삶과 시간을 나누고 함께 하기를 가장 즐거워하던 이였다고 기억하셨어요. 사실 처음에는 상권 활성화에 웬 서체인가 했는데… 그런 가치와 철학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좋은 도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날이 더 지나 여름의 한복판을 향해 갈 무렵, 부여군 신동엽문학관에서 본격적으로 아카데미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카데미를 통해 서체에 대한 관심도 높이고, 사람들에게 신동엽손글씨체를 알리는 실질적인 방법이었죠. 첫 번째 시간은 김형수 신동엽문학관 관장님의 설명으로 신동엽 시인의 삶과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두번에 나눠 이뤄졌던 김형수 관장님의 신동엽의 삶 강의

시 속에 나오는 많은 표현들 속에 백제, 부여를 중심에 두고 아사달과 아사녀, 그리고 백마강을 노래한 시인. 그는 작품에서 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이웃들과 소통하고 한글을 가르쳐 문학활동을 할 수 있게끔 한 완전한 '부여 촌놈'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부여 ‘출신’ 문인을 넘어

그냥 ‘부여 문인’이라 생각하라고 하셨죠.


그리고 인상 깊었던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신동엽 시인이 좋아한 톨스토이의 말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당신이 우주가 되려거든
당신의 마을을 노래하라

자기의 마을에서 자기의 친구와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한 신동엽 시인의 사상적 알맹이는, 바로 공동체였습니다. 부여에 사는 공동체의 모습을 덤덤한 장편 서사시로 남겨 놓은 작품이 신동엽 시인의 또 다른 대표작 <금강>입니다. 시인은 서사시 <금강> 속에서 한 마을에서 아이에게 주고팠던 것이 ‘이야기의 씨’라고 했죠.

신동엽 시인이 직접 썼던 서사시 <금강>의 친필 원고. 이 원고의 글씨를 원도로 해 '신동엽손글씨체'가 만들어졌다고 해요 :)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쓴 금강의 손글씨 원본을 문학관에서 보았다. 뭔가 동글동글하면서도, 자유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조화로운 필체 속에서 시인의 정서가 보였습니다. 공동체를 지향한 시인의 정서가 담긴 그 손글씨를 부여를 상징하는 서체로 만들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어쩌면 부여군과 주민들을 위한 또 하나의 ‘진심’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후엔 부여에서는 아카데미를 통해 주민들이 함께 모여 꽃으로, 비즈로 글씨를 만들어보며 서체와 친해지는 시간도 가졌고, 사람들이 이 서체를 소개하고 알리는 다양한 행사 부스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조용했던 거리가 복작복작해지는 순간들이 많았죠. 그리고 대망의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신동엽문학관 마당에서 서체 반포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마을 주민들과 지역의 리더들, 그리고 많은 청년들이 이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로컬 브랜드와 서체 제작 분야 전문가를 모시고 앞으로의 활용에 대해 아이디어를 구하고, 함께 논의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2023년 10월 9일 신동엽문학관에서 열린 서체반포식 현장

서여기인(書如其人)

: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


공동체를 노래하던 시인의 손글씨는 한 지역의 공동체를 브랜딩하는 서체가 되었습니다. 마을을 사랑하고, 자기 주변의 이웃들에게 나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었다는 시인의 마음과 인품이 글씨에 담겨 정말 지역 사람들의 삶을 한 부분이나마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글씨 안에 깃들였던 신동엽 시인의 정신이, 시인의 공동체를 향한 마음이 글씨를 통해 다시 나온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서체는 2024년 홍콩 DFA에서 Merit Award를 수상했습니다. 앞으로도 이 서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되어서, 지역이, 로컬이 살아나는 한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부여군 서체 다큐멘터리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0PYlIFQNENY&t=6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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