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일요특선 <지구촌 새마을운동, 희망의 씨앗>
오늘은 올해 초에 만들었던 한 다큐멘터리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었을 테고, 너무나 당연히 알고 있는 이번 이야기의 소재는 <새마을운동>입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에게는 ‘나의 이야기’겠지만, 80년대생인 저에겐 직접적으로는 경험한 게 별로 없는, 개인적으로는 낯설고 잘 알고 있는 내용이 아닌 소재였습니다. 저에겐 그저 당시 대한민국이 새마을운동을 통해 실제적인 경제 발전의 토대를 놓았고 농촌부터 마을 단위의 발전을 이룩했다 정도의, 딱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전부였었죠.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전 국민을 뭉치게 했던 경제개발운동, 그래서 이미 잘 살게 된 지금의 대한민국에게는 그저 과거의 일일 뿐인 일이었습니다.
저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도 그냥 시큰둥했습니다. 마음을 움직일 만한 주제도, 뭔가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할 만한 주제도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솔직히 처음 시작할 땐 그저 일이 적은 비수기에 들어온 돈 벌 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성남에 위치한 새마을운동중앙회에 가서 회의를 했습니다. 이번에 13개국에서 글로벌 협력관들이 한국에 모여서 연수를 하고, 그 내용을 추가해서 작년에 찍어놓은 해외 기촬영분과 함께 편집해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말이었습니다. 딱 한 군데에서 '응? 신기하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13개국에서
한국에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오는
글로벌 협력관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국의 과거가 자신들에겐 현재인 사람들이 지구촌에는 굉장히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절실하게, 간절하게, 지금도 우리 가족, 우리 마을, 우리나라의 빈곤을 이겨내 보고자 새마을운동을 찾는 곳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특히 우간다에서는 한국의 지원 없이 생겨난 무수한 새마을운동 자체시범마을들이 있다는 것도 듣게 됐죠.
그렇다면 이건 진짜 현재의 이야기구나!
그렇게 이 다큐멘터리의 제작이 시작되었습니다. 공항에서 첫 촬영이 시작됐습니다. 여러 번의 환승을 거쳐 24시간이 넘는 시간을 여행해 한국으로 입국하는 6명의 협력관들과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우간다, 탄자니아, 부룬디, 잠비아에서 온 협력관들. 그들의 얼굴에는 피곤보다는 설렘과 기대가 가득해 보였습니다. 함께 새마을운동중앙회 연수원까지 가서 짐을 푸는 모습까지 찍었습니다. 우간다 협력관님의 가방을 열었는데 온갖 저장매체들이 나왔습니다. 중앙회에서 제공받았다는 카메라, 노트북, 외장하드와 필기구들. 온통 이곳에서 배우는 모든 걸 잘 담아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물건들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자신의 임무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더군요.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연수 일정이 시작됐습니다. 13개국 21명의 협력관들을 만났죠. 연수원 안에서 수많은 강의들을 듣고, 밤마다 분임 토의를 하며 스스로의 마을에 어떻게 적용할지 토론하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과정들은 솔직히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협력관들은 어떤 내용을 듣든, 무슨 대화를 나누든 늘 밝고, 진지했습니다. 그들에게 새마을운동은 지금 아주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희망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오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마을 구성원들이 서로 힘을 모아 스스로 마을을 변화시켜 가는 운동. 그리고 그 작은 변화들과 성공의 경험들이 모여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가는 모습. 그리고 그 작은 성공의 경험들을 그 안에서 또 나누며 새로운 성공을 자신의 나라에서도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하는 모습들. 생각보다 더 뜨거운 열기가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협력관. 마을 리더. 누군가 한 사람의 열정과 노력이 한 마을을 넘어 국가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부를 하면서 그 생각이 확증되었죠. 인터뷰를 통해 듣게 되었던 새마을운동의 진짜 강점은 마을 안에서 지도자가 선출되고 결국 그 '사람'에서 시작하도록 설계된 운동이란 것이었습니다. 국가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운동이 조금 작게는 마을의 변화를 끌어내는 사회 운동이 결국은 한 사람에서 시작한다는 거죠.
21명의 협력관들은 연수를 모두 마친 뒤 다시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과일을 건조해서 새로운 수익 사업을 창출해 보겠다는 아이디어를 들고 돌아가 진행하고 있기도 하고, 자신들만의 커피를 브랜딩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보겠다는 곳도 있었습니다. 과연 이들을 통해서는 또 어떤 놀라운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게 될까요?
돌아보면 저에게도 새마을운동이라는 것이 어딘가 꺼려졌던 이유는 '정치적 프레임'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치적 프레임을 차치하고, 이 운동 자체를 바라보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희망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굉장히 유의미한 움직임인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46개 국에서 새마을운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이번 프로젝트가 새마을운동이 이들을 통해 어떤 변화들을 일으키게 될지, 진심으로 기대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