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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Oct 21. 2023

드라마

 하루 일을 마치고, 하늘이 어두워질까 말까 하는 시간에 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벚꽃이 졌다. 아니, 피고 있었던가. 환절기에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그해는 유달리 더.

 집이 아닌 병원으로 퇴근했다. 전염병 때문에 병원은 시끄러웠다. 모든 출입구를 막고 응급실을 지나는 하나의 길만 열려 있었다.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병원을 드나드는 모든 이를 통제했다. 그곳을 지나가며 모니터를 보았다. 그 속의 나는 초록색이었다가 노란색인 울렁이는 사람. 눈도 코도 입도 없는 일그러진 사람.

 오른쪽으로 돌면 계단이 나왔다. 2층으로 올라갔다. 간호사들은 늦은 시간에도 바빴다. 많은 병실 중 한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제일 왼편 침상에 기대앉은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왔어?’ 하고 다시 눈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TV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다.

 “엄마, 아주 드라마 중독이구만?”

 엄마는 웃으며 답했다. 사람들 보니까 같이 보는 거지, 뭐.


 엄마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TV 틀어서 나오는 이야기를 편식하지 않고 보았다. 요새는 TV가 복잡해져서 조작을 어려워한다. 그래도 공중파 채널 번호를 외워서 저녁 시간에 하는 드라마를 찬찬히 보신다. 중간부터 보기 시작해도 그냥저냥 보신다. 감정변화가 크지 않은 엄마는 웃긴 장면에서 수수하게 웃고, 슬픈 장면은 담담하게 넘어간다. 창문 밖 비 내리는 풍경 쳐다보듯 화면을 구경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잠잠하게 응시하다가도 이거 봐, 이래서 일찍 결혼해야 하는 거야, 느닷없는 말을 했다.

 나는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갑자기 결혼 이야기를 하며 나한테 불똥이 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드라마는 너무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해서 영화와 비교하면 비효율적이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고 싶은 나에게 매회 끊어지는 공백은 곱씹을 거리가 아니라 불필요한 잡념 같았다. 빗물 빠진 배수구에 남겨진 생각의 찌꺼기가 싫었다. 지금 와서는 드라마를 종종 보지만, 오랜 세월 외면했다. 엄마가 드라마에 몰입할 때 나는, 지금 흘러가는 이 전개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를 설명하려 들었다.


 엄마는 ‘엄마’로 살면서 어렵게 시작한 공부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여유가 생겼을 때, 그러니까 저녁 늦게까지 일하지 않아도 되었을 때, 드라마를 틀곤 했다. 나는 엄마가 공부를 그만두고 그 대신에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려서 공부 못 한 엄마는 학업에 목마른 이였다. 늦은 나이에도 새로운 우물을 파던 엄마였는데, 이제는 갈증을 해결하려 물 대신 독주를 마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싫었다. 어린 나에게 드라마는 엄마 꿈을 갉아먹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입 밖에 낸 적은 없었다. 엄마는 드라마 보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엄마, 이게 재밌어? 맨날 똑같은 내용이구만.”

 엄마는 재미있으니까 보는 거지, 하셨다. 내가 재미없는데? 하면, 이 안에 인생이 있는 거야, 하셨다. 인생 없는데? 하면, 엄마는 나를 쏘아보면서 조용히 해! 하셨다. 그러면 나는 엄마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깔깔 웃었다.


 그해 봄, 엄마가 귤밭에서 쓰러졌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폐암에서 전이된 뇌종양이었다. 종양이 커지면서 뇌압이 올라가 쓰러진 것이었다. 쓰러지지 않았다면 폐암인 줄도 몰랐을 것이다. 증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유방암도 발견되었다. 의사는 미안한 표정으로 부정적인 말을 했다. 여기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서울의 병원으로 갈 것을 권했다. 동생은 매일 울었다. 나는 숨어서 울었다. 늙어버린 아빠는 울 기운이 없었다. 우리 남매는 아빠를 닮아 눈물이 많았는데, 아빠 얼굴의 깊은 주름은 눈물이 길을 낸 것 같았다.

 서울로 가기 전 엄마는 일단 지역 내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한동안 나는 퇴근 후 병원으로 가는 일상을 보냈다.

 “엄마, 나 왔어.”

 엄마는 드라마가 하지 않을 때만 날 반겼다. 반김은 잔소리를 위한 것이었다. 이건 했니, 저건 왜 안 했니, 결혼은 언제 할래, 그래도 여기 있으니까 너랑 이야기 많이 해서 좋네.

 드라마가 시작되면 잔소리는 잠꼬대처럼 흩어졌다. 이건 했니…, 저건…, 결혼은…, 응? 무슨 얘기 하고 있었지?

 드라마는 엄마의 꿈을 먹고 자라서 그녀의 언어를 잠들게 했다.

 “알겠어요, 나 간다. 내일 또 올게요.”

 엄마는 민망함에 웃었다. 언제나 옆에 있을 것처럼, 나무처럼 웃었다.


 서울 병원으로 갔다.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아파했다. 근육이 빠지고, 코에서 손톱에서 피가 났다. 발이 부었고 걷는 것도 버거웠다. 엄마를 평온하게 하는 것은 드라마였다. 녀석이 엄마의 마취제가 되었다.

 지금은 서울 병원으로 통원한다. 예약이 많으면 달에 여섯 번도 가지만, 진료가 없는 달도 있다. 제주에서 오가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병원을 자주 가야 하는 달에는 서울의 요양 병원에서 지냈다. 그곳에도 TV가 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걸어도 답이 늦으면 어김없이 드라마를 보는 중이다.


 4월이면 부모님 댁 옆으로 길게 줄 선 벚꽃의 분홍빛이 절정에 달한다. 엄마 아프기 전에는 그 길을 같이 간 적이 별로 없었는데, 아프고 난 후에는 불효자 안 되려고 매년 하루는 손잡고 걸은 것 같다. 때가 되어 봄비가 내리자 벚꽃이 많이 졌다. 아니, 무거운 햇살과 함께 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드라마에서 배웠다는 인생은 무엇일까. 그냥 한 말일 수도 있고, 뭔가 있을 수도 있다. 나는 드라마를 안 봐서 모르겠다. 드라마 속 암 환자는 어떻게 되었더라. 살아났었나, 아니었나. 주변인은 어떻게 되었더라. 이겨냈었나, 무너졌었나. 나는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저 내년 봄은 혼란스럽지 않길 바랄 뿐이다. 우리 가족에게 봄이 다시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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