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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Oct 21. 2023

석촌호수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이상해.”

 동생이 보내준 사진 속에서 엄마는 한쪽 얼굴만 웃고 있었다. 편마비처럼 보였다.

 8시 반에 엄마는 동생과 함께 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8시 40분에 갑자기 엄마가 밥상을 차렸다. 엄마는 시간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동생이 재촉했다. 이제 나가야 한다고, 비행기 놓친다고 다급하게 말하는 동생의 얼굴을 한 번 쓱 보더니 엄마는 느긋하게 TV를 틀었다고 했다.

 “의사 만나면 한 번 물어봐 줘.”

 동생과 전화를 끊고 ‘도착’이라고 써진 공항 관문을 노려보았다. 나는 김포공항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이 제주공항까지 바래다주면 내가 김포공항에서 병원으로 모시기로 했다. 엄마 혼자 비행기에 태운 것이 후회되었다. 조금 괜찮아졌다 싶었는데 다시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이다.


 비행기 도착 시간에 맞춰 전화했다. 엄마는 이제 비행기에서 내렸다고 했다. 전화를 끊었는데 30분이 지나도 엄마는 나오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직원에게 가려는데 그제야 느릿느릿 문을 통과하는 엄마가 보였다. 공항 카트를 보행기처럼 밀면서 나왔다. 작은 캐리어와 배낭을 싣고 왔다. 엄마가 공항에서 카트를 사용하는 걸 처음 보았다.

 “엄마, 왜 이렇게 늦었어. 이건 왜 끌고 온 거야.”

 짐 찾다가 왔지. 엄마 눈에 초점이 없었다. 평소보다 말이 줄었다. 엄마가 조잘조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동생 말대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짐을 못 찾아 직원이 캐리어를 카트에 올려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밥 먹고 가자.”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엄마 뭐 먹고 싶어, 물어도 엄마는 맨날 없다고 했다. 한식당에 들어갔다. 엄마는 들기름메밀면을 고르고 나는 사골떡만두국을 골랐다. 내 음식이 먼저 나와서 국물 마셔 보라고 권했다. 맛있다, 짧게 평했다. 사골이니, 묻기에 그렇다고 답했다.

 전화기를 꺼내는 엄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잘 걷지도 못했다. 지팡이를 왜 안 가지고 왔냐고 하니 깜빡했다고 하셨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는데 위로 한 걸음씩 올라가셨다. 잘 걷지도 못하면서 왜 자꾸 위험하게 올라가냐고 타박했다. 엄마는 대꾸를 안 했다. 그것이 더 불안했다. 신경질을 내도 반응이 없어 더 신경질을 냈다.


 병원에 도착하고 엄마는 짐을 풀었다. 칫솔이랑 마스크를 사다 드렸다. 엄마는 틀니 끼는 게 아프다고 했다. 잠깐 말이 많아질 때가 있었는데 그때만 괜찮아 보였다. 곧 초점을 잃었다. 내일 아빠가 부친 택배로 짐이 더 올 거라고 했다.

 “왜 나를 안 쳐다봐. 나 좀 봐.”

 뭘 안 봐, 보는구만. 나를 본다는 엄마의 시선은 엉뚱한 곳에 가 있었다. 그 시선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억지로 눈을 맞췄다. 초점 흐린 엄마의 눈동자가 나를 더듬었다. 엄마가 아들을 잊을까 봐 겁이 났다. 엄마랑 같이 사진을 찍고 병원을 나왔다.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씻고 나오니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밥은 먹었어?”

 엄마가 돌아왔다.

 “응, 먹었지. 엄마는 뭐 먹었어.”

 엄마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야채도 먹고, 된장국도 먹고.”

 그 말에 나는 괜히 울컥했다. 잘 먹었네, 잘했네.


 일주일 뒤 MRI를 찍었다. 병원에 전화를 걸어 다음 진료 일정을 당겨줄 수 없는지 문의했다. 며칠 뒤 찾은 병원에서 의사가 말했다. 종양이 너무 커져서 떼어내야 한다, 전신마취 후 개두술을 해야 할 것 같다.

 계속 머리 쪽이 문제였다. 그동안 감마나이프 수술을 여러 차례 했는데 머리에 방사선을 쬐는 수술이었다. 올 초에도 감마나이프 수술을 위해 나와 함께 일주일간 입원했는데, 종양은 성장을 멈추지 않은듯했다. 칼을 대고 머리를 가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큰 수술을 앞두고 엄마는 아빠가 옆에 있길 바랐다. 자식들 앞길을 막기 싫어서였다. 나와 동생이 면접을 앞둔 상황에서 아빠도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온 가족이 실업자였다.


 수술 당일, 하필이면 나는 심한 감기에 걸렸다. 병원에 가서 약을 먹었는데도 낫지 않았다. 엄마와 통화했다. 옆에는 아빠와 동생이 있었다. 어젯밤 12시부터 금식이라고 했다. 배고프겠네, 했더니 괜찮다고 하셨다.

 “수술 잘 받고 밥 잘 먹고. 금방 데리러 갈게요.”

 예상 시간보다 수술이 길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다. 엄마는 중환자실에 하루 더 있어야 하니, 아빠와 함께 숙소에서 묵겠다고 했다.

 이틀 후 다시 병원에 갔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엄마가 동생 손을 잡고 내려왔다. 엄마는 괜찮아 보였다. 아빠와 동생이 엄마를 잘 보살펴주었다. 퇴원하는 날 엄마를 데리러 갔다. 지역 병원에서 실밥을 빼야 한다고 했다.


 제주 가기 전날, 엄마가 석촌호수 가 보고 싶다고 해서 동생이 호수 근처의 숙소를 잡았다. 이유가 있었는데 까먹었다.

 저녁에 같이 걷기로 했는데 엄마가 너무 힘들다고 해서 아침에 걷기로 하고 잤다. 아침에도 엄마는 지쳐서 싫다, 못한다 투정하다가 운동해야 한다는 아들 잔소리에 못 이겨 호수 주변을 함께 걸었다. 걷다가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았다. 더위에도 나무 아래는 시원했다. 호수 건너 놀이공원에는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놀이기구가 들썩이면 환호성이 들렸다. 엄마는 지나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유, 여기저기서 난리네.”

 동생과 나는 웃음이 났다. 엄마 목소리가 반가웠다.

 늦게 나온 탓에 오래 걷지도 않았다. 이제 비행기 타러 가야 했다. 그래도 이번엔 비행기를 놓칠 봐 무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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