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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Oct 21. 2023

내가 뭘 좋아하더라

 언젠가 엄마와 24시 순두부집에 갔다. 엄마는 버섯 순두부, 나는 만두 순두부를 주문했다. 엄마는 아들 여자친구에게 관심이 많았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이런저런 질문을 하셨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물어서, 안 가리고 다 잘 먹는다고 했다. 엄마가 사 주는 건 다 좋아할 거라고 했다. 엄마는 잘 먹는 것도 복이라고 했다.

 겨울의 끝에 상견례를 했다. 엄마는 최근 몇 년 중 가장 건강한 모습이었다. 같은 병실 동료의 소개로 아침부터 미용실에 다녀왔다. 아빠가 새벽 비행기로 제주에서 가져온 단정한 외투를 입었다. 표정이 밝았다.

 서울에서 양가가 만났다.

 “어머님, 오늘 너무 예쁘세요!”

 예비 신부의 칭찬에 엄마는 활짝 웃었다. 음식도 평소보다 잘 드셨다. 식당 음식이 몸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괜찮다고 하셨다.

 우리는 결혼식 나중에 하고 혼인신고만 하기로 했다. 충남에 살림을 차리고 함께 살았다.


 나는 무직 상태로, 일 구하기 전까지 엄마를 모시고 제주와 서울에 오갔다. 진료 후 제주로 돌아가야 했는데, 며칠 뒤에 다시 진료가 있어서 또 서울로 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비행기 자주 타는 것이 힘들었다.

 “어머님 우리 집으로 모시자.”

 아내의 제안이 고마웠다. 엄마는 부담스럽다고 안 온다고 했지만, 계속 지낼 것도 아니고 이번 한 번만 초대할 거라고, 와서 집 구경하고 가라고 설득했다.


 아반떼로 엄마를 모셔 온 저녁에 문예의 전당 공연이 있어 함께 갔다. 클래식 음악 공연이었다. 아내는 문화 시민이어서 이런 공연을 좋아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 베르디가 남긴 진혼곡’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음날은 소공연장에서 음악회가 있었다. 우리나라 민요를 피아노로 재해석한 곡들을 모아 들려주었다. 아이들을 위한 공연인 줄 모르고 갔다. 다행히 엄마는 어제보다는 오늘 공연이 재밌었다고 하셨다. 어제는 모르는 곡들이었는데 오늘은 아는 음이라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어머님은 뭘 좋아하세요?”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여쭤보았다. 엄마는 고민하더니 말했다.

 “글쎄, 없는 것 같아.”

 “이제부터 알아가면 되죠.”


 엄마가 대게를 안 먹어봤다고 해서 다음날 대겟집에 갔다. 살이 부드러워서 잘 드셨다. 맛있다고 했다. 함께 영화도 보러 갔다. 가족끼리 볼만한 영화가 마땅치 않아서 그나마 대중적인 범죄 오락영화를 봤다.

 “엄마, 무서우면 눈 가려요.”

 “내가 애기도 아니고.”

 내가 놀려도 엄마는 재밌어했다.

 하루에 한 번 동네를 산책했다. 공원 운동기구를 지나갈 때면 엄마도 해 보라면서 한 번씩 떠밀었다. 엄마는 아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좋아했다.

 며칠 뒤, 진료를 마치고 제주로 갔다. 엄마는 제주 집에서 제일 편해 보였다.


 엄마는 밭일하면서 취미로 기타를 친 적이 있었다. 동네 아는 사람의 권유로 마을 밴드부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듣기로는 과거에 밴드 활동을 했던 선생님 겸 밴드 리더가 나머지 어르신들을 가르쳐주는 분위기 같았다. 어느 순간 집에서 기타 줄을 튕기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비록 보통 연주 속도보다 0.2배속으로 한 음 한 음 치는 기타였지만 나는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옛날 내가 플루트를 연주하는 걸 보는 엄마의 마음이 이랬을까. 어쩌다 집에 갔을 때 엄마가 기타 연습을 하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을에서 만든 새해 달력에는 마을 주민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진이 월별로 걸렸다. 그중 마을 밴드부가 공연하는 사진이 있었는데 엄마의 모습도 실렸다. 무려 공연씩이나 했는데 아들한테는 말도 안 한 엄마였다.

 “왜 말 안 했어!”

 “부끄러워서 말 안 했지. 말해서 뭐 할 거야.”

 “뭐하긴, 아들이 구경 가면 좋은 거지.”

 “일하는데 어떻게 와.”

 “일 빼고 가면 되지.”

 “아이고, 됐다.”

 엄마는 연습해도 실력이 좋아지지 않는다고 투정 부렸다. 내가 어설픈 지식으로 가르치려 들면, 잔소리한다고 싫어했다. 밭일이 많아지면서 기타 치러 가는 발걸음도 줄어들었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엄마의 기타는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취업했다. 첫날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문자가 왔다.

 ‘오늘 첫 출근이 어땠니.’

 메신저는 어렵다고 핸드폰 문자로 보내는 우리 엄마. 간결한 문장이 엄마다웠다. 엄마는 평소에 아들이 무뚝뚝하다고 서운해했다. 말 많은 친구 모자를 부러워했다. 생각해 보면 억울하다. 엄마 아빠가 말이 많지 않아서 내가 물려받은 것 같은데.

 나는 곧바로 전화했다. 오랜만에 수다쟁이가 되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렸다.

 한 달이 지나도 엄마의 관심사는 내 일터다. 새로운 직장은 어떤지, 힘들진 않은지, 동료들과 가까워졌는지, 물은 것을 다시 물어도 모르는 척 정성으로 대답했다. 어렸을 때 친구랑 놀다가 집에 들어가면 “친구 이름이 뭐야?” 묻곤 했는데 나는 언제부터 “누구라고 말하면 알아?” 답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누구랑 어울리는지가 언제까지나 궁금한가 보다.

 글을 쓰다 보니 엄마가 좋아하는 걸 내가 알고 있다. 내가 엄마를 웃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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