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우내 May 14. 2024

어쩌다, 면접

물 들어올 때 노젓기






매일을 사랑방처럼 들락날락거리던 채용 플랫폼에 올라온 모든 공고에 [지원하기]를 누르기를 수십 번.

유독 눈에 띄는 공고가 하나 보였다. 응? 채용공고를 보니 굉장히 friendly한 분위기의 회사처럼 보였다. 워낙에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였기에 회사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분위기가 나의 입사 결정에 큰 영향을 줬다. 유튜브 및 블로그, 회사 홈페이지를 다 참고해 보니 더더욱 확신이 들었다. 뭣보다 해외 출장이 잦다는 점,해외 경험은 여행으로도 전무했던 내게 해외 출장은 회사원에게 갖는 환상 그 자체인 존재였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기업이라는 부분이 내가 갖고 있던 의료업계에서의 경험을 조금이라도 녹여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 또한 생겼다. 바로 입사 지원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면접 일정을 묻는 전화에 첫 면접과 달리 능숙하게 앞서 잡힌 면접을 피해 일정을 잡았다. 바짝 긴장하며 열망할 때는 면접이 1도 안 들어오더니 마음을 내려놓으니 돛에 날개 단 듯 생각보다 여러 개의 면접 제안이 들어온 것이었다.





수요일이 원하던 기업의 면접이었는데, 이미 수요일에 다른 기업에 면접을 잡아 둔 상태였다. 하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무리가 되더라도 둘 다 지원해 보기로 했다. 앞서 말한 수요일의 다른 면접은 UIUX 직무는 아니었지만 컨텐츠 디자이너인 줄 모르고 무지기수로 입사지원을 돌린 내 잘못이 컸으므로 면접 경험이라도 키워보자는 취지였다. 

대면 면접 전에 1차 면접으로 줌으로 인터뷰처럼 가벼운 면접을 봤었다. 카메라 화면은 켜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고 면접관 분께서도 카메라를 끄고 진행하셨기에 오픈북처럼 준비했던 면접 답변을 화면에 띄워놓고 부담없이 볼 수 있었다. 순조롭게 끝난 면접 덕분에 1차 면접 합격 연락을 바로 받았고 2차 면접에 임할 수 있었다. 2차 면접 전, 실무 과제가 있어서 과제까지 마무리 하고 대면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사실 이땐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진 상태라 어느 누구라도 내게 면접 제의를 준 게 너무 감사했다. 이 회사에 붙어서 설령 갈지 말지를 고민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면접 경험은 언제 또 내게 올지 모르는 것이기도 했다. 


월요일의 면접 또한 실수로 낳은 결과긴 했다. 그나마 UX 리서처 직무에 지원하게 된 것이었는데, 해당 기업에서 나의 이력서를 보고도 면접 제의를 준 것이었다. 후에 기업 분석을 하면서 UX 리서처에 지원했구나를 알게 됐다. 하지만 이 또한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자. 하며 면접 제안에 응했던 상태였다. 


어찌보면 가고 싶은 회사의 면접이 가장 마지막에 있었고, 이때 이미 직감했던 것 같다. 이 선에서 끝나겠구나. 세 회사 중 하나의 회사에 입사하게 될 것 같다는 직감.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학원을 다닌 시기부터 취준 기간까지 나의 이직 기간이 거의 1년을 채워가고 있었고 경제적 부담감과 절대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원했던 나는 하루하루 피가 말리는 기분이었다. 이젠 정말 정착하고 싶다. 라는 마음이 가장 컸다.


 

월요일이 되었고, 삼성역으로 향했다. 삼성역에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는데 도보로 20분 정도 걸으니 입사 제의를 준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는데 오기 전 연락을 달라는 면접관분의 말이 떠올라 다시 1층으로 이동해 긴장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려던 찰나, 연락할 번호를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면접 제의를 주셨던 면접관분께서는 회사 번호도 아닌 개인 번호로 면접 제안 연락을 주셨기 때문에 나의 통화기록은 저장되지 않은 무수히 많은 스팸 번호와 함께 뒤섞여있었고 따로 문자로 문의를 했던 적 또한 없어 삽시간에 막막해졌다. 기억을 더듬어 연락이 왔던 날짜를 되새김질해 보며 조금이라도 낯설지 않은 번호를 눌렀다. 긴 수화음 끝에 굉장히 바빠 보이는 목소리의 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면접을 보러 왔다고 하니 4층 올라가서 면접 보러 왔다고 하면 면접장으로 안내해 주실 거예요, 라며 본인이 현재 외부에서 들어오고 있어 정신이 없다며 급히 전화를 끊으셨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서둘러 면접 장소로 향했고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하며 면접 장소에서 대기했다. 다른 면접관 분께서 물을 주시며 다른 면접관 분께서 외부에서 들어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양해의 말을 함께 건네셨다. 


조용한 회의실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곳저곳을 살폈다. 내 회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10분 뒤, 면접이 시작됐고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로 면접이 진행됐다. 이사장님이라고 말하는 분은 서글서글한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나의 다양한 알바 경험과 대외활동을 눈여겨보신 듯했다. 나 또한 다양한 경험이 나의 성실함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역시 의미없는 경험은 없다. 


연봉은 원하는 선이 있냐는 말에 신입의 자세로 회사 내규에 따르겠다고 말했지만 원하는 연봉 선이 있다면 최대한 맞춰 줄 수 있다는 말에 다른 곳의 면접 보면서 이렇게까지 호의적이었던 적이 있었나? 라고 느꼈다.



UX 리서처로 지원하셨지만 디자이너인 줄 알고 지원하신 거죠? 라는 찔리는 몇 마디에도 웃으며 편히 대화했다. 무조건적인 기대를 놓으니 덩달아 긴장이 조금 덜어졌다. 

하지만 망설이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했던 전공이나 경험들로 미루어봤을 때 외부 교육이나, 마케팅 업무 같은 것도 겸할 수 있다는 말들이 직무에 대한 경계가 없는 것 같아 불안해진 것이다. 현장에서 바로 합격 통보를 받았고 나오는 날짜까지 약속하고 나왔지만, 찝찝한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면접을 다니며 한 번도 받지 못한 면접비까지 손에 들고 나오며 얼떨떨한 마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글로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면접에서 받은 나름의 긍정적인 피드백과 연봉에 대한 부분을 말하며, 어쨌든 합격했다는 소식. 엄마도 나만큼이나 불안해하고 걱정을 많이 했을 거라는 생각에 엄마에게 바로 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덩달아 기뻐하셨고, 축하해 주셨다. 그 다음 룸메, 친언니, 큰이모까지. 앞으로의 면접이 두 개가 더 남았지만 한 군데에서 합격 통보를 받으니 상대적으로 마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대망의 희망하던 기업의 면접일이 되었다. 후에 컨텐츠 디자이너 면접이 있었지만, 그곳은 과감히 포기하기로 했다. 이미 한 군데에서 합격 소식을 받았기 때문에 시간과 교통비를 소진하고 싶지 않았다.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이전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저장해 뒀던 소원을 이루어 주는 배경화면까지 착실하게 잠금화면으로 바꿔 두고, 가고 싶었던 회사의 로고를 얄팍하게 카메라로 찍어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했다. 그 정도로 그 회사를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크게 메리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저 기업 문화가 마음에 들고, 유튜브에서 신나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이 회사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붙을까, 말까... 라는 불안감이 들 때마다 회사 사이트를 찾아 인재상에 대한 부분을 곱씹고 더 완벽한 답변을 떠올리고, 예상 질문을 좀 더 촘촘하게 확인했다. 공유 오피스로 보이는 사무실에 얼빵하게 헤매고 있으니 마침 화장실을 가던 직원분의 눈에 들어 면접장으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기 전에 보니 정장을 입고 계신 분이 한 분 계셔 나는 다른 사무실의 직원 분인 줄 알았다. 나를 안내해 준 분께서 물을 갖다 주시면서 내 뒤에 앉은 분께도 물을 건네 주기 전까지는.

물을 건네 받고 한 모금 마시는데 뒤에서 들리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남자분의 목소리에 아득해짐을 느꼈다. 


'뭐지, 나 혼자 면접 보는 게 아닌가? 아님 한 명씩 빠르게 보는 건가..?'

별별 생각이 들어 혼란스럽던 찰나, 나와 똑같은 생각이었는지 그 남자분께서 먼저 말을 거셨다.


"면접 보러 오신 거예요? UIUX?"

"아, 네... 면접 보러 오신 거죠?"

"네. 근데 다대다인 줄 몰랐는데 당황스럽네요. 하하."


호탕하게 뱉는 웃음에서 시원한 성격이 묻어난다. 경산에서 올라왔다는 소개와 함께 특유의 사투리가 배어나는 말투로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없다가 현 상황의 당황스러움에 공감하며 금세 대화에 녹아들었다. 그래도 이 분이랑만 보는 거겠지. 라고 안심하다가 다른 남자분의 등장으로 패닉이 왔다. 그 남자분은 우리를 보고 바로 면접 보러 오신 거냐고 묻더니 이후부터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티를 내기 시작했다. 대기업도 아닌데 다대다 면접인 거냐며 볼멘소리를 쏟아내는 통에, 나도 모르게 한심하다고 느끼고 말았다. 


그렇게 욕하는 이 기업에 그러는 본인도 면접을 보러 온 게 아닌가. 저렇게 볼멘소리해서 본인에게 이득일게 대체 뭐라고. 이렇게 된 김에 나라도 정신 차리고 면접 봐야겠다. 라고 곱씹으니 그때부터 모든 게 선명해졌다. 우선 뽑아온 예상 답변지를 죽 훑기 시작했다. 내가 그토록 염원했던 면접이 아닌가. 오늘 이 한 순간으로 내가 원하는 회사에 가는가 아닌가가 걸렸다고 생각하니 더이상 여유 부릴 새가 없었다. 


면접 시작 시간에 임박해 도착한 여자분을 끝으로 5:4 면접이 시작됐다. 애초에 면접관분이 그렇게 많은 경우도 처음 봤다. 가운데 계신 대표님을 중심으로 양쪽에 나머지 직원분들이 앉아 계셨다. 앉은 순서대로 자기소개부터 시작했고, 첫 면접을 제외한 이전에 봤던 면접은 굉장히 편안한 분위기였구나, 를 느끼며 마지막 순서인 내 차례가 됐다. 준비해 온 기업 역량을 녹여낸 자기소개를 무리 없이 해냈고, 이후에 했던 면접 질문도 막힘없이 대답했다.


대표님의 영어질문에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그 마저도 무리 없이 해냈다는 생각에 안심했다. 자아도취일 수도 있지만 당일에 있던 모든 면접자들이 여기 붙으실 것 같아요, 라고 말하니 안심이 됐다. 하지만 나랑 면접을 본 분들이 다가 아닐 거라는 생각에 금세 다시 불안해졌다. 함께 면접 본 여자분이 다녔던 학원이 나와 같은 학원이었다는 걸 알고 면접 직후 먼저 말을 걸며 금세 친해졌고, 면접장을 나와 지하철역까지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합격한 곳에 대해 말하며 고민 중이라 하니, 본인도 그런 식으로 들어갔던 첫 회사가 금세 망해 졸지에 다시 취준 중이라며 푸념을 하는 면접자분의 이야기에 더더군다나 이 회사가 간절해졌다.




  제발 붙었으면 좋겠다. 









자세한 면접 후기는 블로그에

https://blog.naver.com/strowz1









이전 08화 시베리아만큼 춥고 냉랭한 취업시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