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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우내 May 27. 2024

잠시 멈춰있는 사람들에게

나를 갉아먹는 불안




내가 취준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20대 후반에 이직을 준비하면서 주변의 걱정도 많이 샀다. 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걱정해 주고, 나의 미래를 불안해하는 이 모든 게 사랑이라고 느끼다가도 불시에 극도로 불안해졌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필시 불안은 옮는다. 

주변인의 불안에 나까지 그 불안을 안고 살았던 것 같다. 시간과 돈, 두 가지가 부족하다고 느끼니 점점 마음이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그토록 원하던 서울살이였음에도 초반에 멋모르고 놀던 한 달을 제외하고는 급속도로 우울해져갔다. 정말로 이직을 할 수는 있을까. 언제쯤 취직이 될까. 여기저기서 귀동냥을 한 불안을 먹이 삼아 내 불안은 몸집을 점점 불려갔다. 그때도 주변에서 입을 모아 하는 소리가 내 전 직업에 대한 미련이었다. 불안해하다가 이도저도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그냥 생각하지 말고 실천하자, 로 마음을 바꿔먹었다.







나 진짜 디자이너 될 수 있겠지? 에서 시작한 물음은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래서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거기다 당장 서울에서 살아야 하니 돈도 벌어야했다. 알바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2022년 추석 명절 언저리부터 면접을 보려 하니 생각보다 면접 제의가 들어오지 않았다. 알바몬, 알바천국... 이 잡듯이 모든 알바 자리를 뒤지고 지원했다. 그러다 연남동의 개인 카페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반년 정도는 일주일에 3일 4시간씩 근무를 하며 한 달에 40 후반 50만원대 언저리를 받았다. 생활비를 쪼개 20만원을 룸메이트와 함께 쓰고 남은 30만원은 원래 붓던 적금을 돌려막기에 바빴다. 그러다 같이 스케줄 근무를 하던 다른 알바생의 스케줄에 변동이 생겨 알바생을 추가로 더 고용할 수밖에 없었고, 3일 나가던 알바가 이틀로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알바비도 줄었다. 투잡을 뛰기 위해 다른 알바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쪼달리기 시작하니까 끝도 없다고... 원래 하던 청년희망적금이 청년절망적금으로 전락해 스스로 내기에 빠듯해지자 결국은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원래는 그냥 해지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남은 반년의 기간은 자기 돈을 넣을 테니 일단은 갖고 있으라고 하면서 가끔 10만원씩 용돈을 얹어서 돈을 보내 주셨다. 이직하면서 엄마한테 손 벌릴 일 없을 거라고 그렇게나 호언장담했었는데, 너무 죄송스러웠다. 불안했지만, 불안을 온전히 느끼기에도 부족한 시간들이었다.




치과위생사, 전 직장이 눈에 띄게 좋은 직장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내 경험상 몇 년을 쉬면서 경력이 단절되더라도 취직, 이직 걱정 없는 직업인 건 확실하다. 물론 나는 청년채움희망공제를 이행하느라 3년 내내 한 번도 텀을 두고 쉬어 본 적이 없었음에도 친언니의 휴식기를 직관하며 느꼈다. 1년씩 쉬면서도 이직은 곧잘했다. 진짜 취직 안 될 걱정은 없다는 걸. 

하지만 그만큼이나 보수적이기도 하다. 의료업계가 이전보다는 많이 유연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아직 소위 말하는 꼰대 문화와 연차의 자유로움이 보장되지 않는 곳도 제법 많다. 그리고 병원에서 재직하는 내내 법의 사각지대에서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당시에 무급휴가, 병가를 낼 수 없었던 일, 원래는 법정휴무일에 쉬지 않으면 연차 제공을 해야 하는데, 회식 한 번으로 퉁친다든가... 등등 여러가지 불합리한 처사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직"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은 비교적 우호적이다. 때문에 나도 이직을 준비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그것이었다.


"근데 치위생이 훨씬 안정적이지 않아...?"

그 말에 뒤따라오는 걱정어린 시선. 물론 대학교 4년을 꼬박 공부해 국가고시 실기와 필기까지 합격해야만 가질 수 있는 직업이었고, 자격증이 아닌 국가 면허증이었기에 나 또한 몹시 아깝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까운 게 하지만 어쩌겠는가. 1화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난 임상에서 일을 하면서 몸이 많이 망가졌다. 내 몸이 이 직업을 버텨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를 찾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직업에, 이 생활에 적응하면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현실에 안주하려고도 해 봤다. 괜히 나름의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하는 게 아닐까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미대 입시를 포기하고 나는 어느새 내 20대를 후회로 붙들고 있었다. 꿈이 명확했고 그에 걸맞는 취미나 관심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나와 더 맞는 쪽을 선택하고 싶은 욕심은 계속 커져갔다. 




취업 준비 기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나를 갉아먹게 되는데,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상황들이 나를 갉아먹는다. 주변의 불안, 경제적 문제, 낮아지는 자존감, 자아효능감, 자격지심 등등... 때문에 이럴 때일수록 멘탈 관리가 필수다. 내가 했던 멘탈 관리 중 몇 가지 팁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1. 비교 금지

가장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것. 가뜩이나 낮아진 자존감을 말려 없애버리겠다는 심산이 아니라면 그 시간에 주변을 환기하는 걸 추천한다. 나는 생각이 많아질 때면 경의선 숲길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걸으며 산책했다.


2. 독서 

하도 비관적인 생각을 많이 했어서 책의 순기능을 이용했다. 원래도 유리멘탈이기 때문에 아주 작은 자극에도 바스라지는 편이라 상념에 잠길 때마다 책을 읽었다. 돈 없을 때는 알라딘이나 교보문고 가서 죽치고 앉아서 책만 읽은 적도 있다. 개인적으로 추천 드리고 싶은 책은 [더 해빙]이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위로를 얻었다.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책. (광고 아님)




3. 다양한 활동

집에만 콕 틀어박혀있으면 우울해지는 편이라, 난 되도록이면 나가서 활동했다. 독립서점도 가 보고, 전시도 다양하게 보러 다녔다. 특히 전시에 품을 많이 썼었는데 그림이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해져서였다. 작가의 의도를 내 식대로 파악하고 분석해 보는 것도 즐겨서 무료 전시나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유료 전시도 얼리버드로 결제해 보러 다녔다. 


에릭요한슨 전시
2022 뱅크아트페어


언리미티드에디션 북페어
스밈 전시


4. 운동

3과 이어지긴 하는데 이유없는 우울함과 불안에 운동만큼 명약이 없다.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불안할 시간을 주지 않고 불안에 침체된 생각을 다른 곳에 집중하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좋다. 나는 수영과 요가를 병행했는데 수강료가 부담되더라도 할부를 끊어서라도 운동은 주기적으로 진행했었다. 수영은 내 넘치는 에너지를 충족시켜 줬고, 요가는 재활과 정신적 수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밖에 클라이밍과 같은 격정적인 헬스 운동도 가끔 병행했다.



매일 SNS에 올렸던 오수완 인증
첫 클라이밍 
제일 맨끝 줄 가장 왼쪽... 첫 요가

도전을 한다는 것은 한 번도 가지 않은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걸 두려워하기보단 익숙하지 않아 현실에 안주하는 걸 가장 큰 두려워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과거를 돌이켜 되새김질해 보면 치과를 다니는 3년의 기간동안에도 충분히 이직 준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도 불쑥불쑥 들지만, 이런 후회는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취준 기간에 깨달았다. 




누구에게나 취준의 기간은 있다. 그게 장기화가 되더라도 오히려 여유를 갖고 돌아보고, 현실에 감사하고 현존하면 그에 걸맞은 보답이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멈춰있는 게 아니라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아주 느릿한 속도라 멈춰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요새 취준 시장이 많이 얼어붙어있다고 들었다. 디자이너 네트워킹 단톡이나, 주변 디자이너분들께도 들으니 이직이 어렵다는 걸 보면 현재 경제 상황에 IT업계쪽이 큰 타격을 입은 게 맞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포기하지 마시길. 나만 면접에서 떨어진다고 할 게 아니라 모두가 취준이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하고, 서류조차도 통과하지 못했다고 낙담할 게 아니라 이 회사가 나라는 인재를 놓치는 거다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여주는 게 나의 정신 건강에 훨씬 좋다. 야속한 말이지만 뭐가 됐든 시간이 흐르면서 해결될 일이다. 모두에게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 주고 싶다. 








이직을 한 지도 벌써 1년이 되어가고 있다. 

모두에게 같은 시간이 주어졌으니 그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나의 관심을 모르면, 방향을 정해 헤쳐나가는 과정을 멈춰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 드리고 싶다. 절대 멈춰있는 게 아니다. 나아가고 있다. 남들보다 뒤처져있는 것도 아니니 취준 기간 동안 자신을 소중히 하며 값진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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